신앙생활을 오래 해 오면서 기도에 대한 컴플렉스를 한 번 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저 사람은 저렇게 집중해서 기도를 잘 하는데, 나는 왜 시작만 하면 바로 딴 생각을 하는 거지?'
'저 사람은 저렇게 긴 시간 열정적으로 부르짓는데, 나는 왜 할 말이 별로 없는 거지?' 등등

특히 딴 생각의 문제는 쉬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들, 그리고 심지어 졸음까지.
그래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 보다는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일단 자신의 소리를 들으며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집중할 수도 있고,
슬쩍 졸음으로 빠지는 일도 방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통성기도라는 것이 모두에게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통성기도는 자신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하다보니
그 기도가 정말 하나님과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에
사실 마음 속으로부터 추천하고 싶은 기도는 아니다.
물론 기도를 성령께서 이끄신다고 할 때 내가 하는 말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통성기도 후에 갖는 심적 평안을 응답이라는 차원으로 설명하려 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발산하는 것(한 풀이)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 소견으로...)

할 수만 있다면 기도를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게 될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쉼없이 일어나는 다른 생각들이 문제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것을 잡념들이라 생각하고 '나는 기도가 잘 안 되'라고 생각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세게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사모하고 그렇게 쉼없이 내 이야기를 쏟아 놓을 수 있었을 때
스스로 크게 위안을 얻고 기도 잘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마음배움터에서 영성피정을 하면서 이 잡념들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됐다.
잠잠해야 할 기도 시간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좀 다른 말로 표현해서 '분심'이라고 하는데,
이 분심이 바로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내 안의 무의식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의식으로 올라오는 생각들을 잘 살펴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을 알게 되면 현재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상처나 아픔의 그림자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심이 다 그런 것을 대변하지는 않기에 잘 살펴보고
경중을 따져보고 흘려 보낼 것은 흘려 보내고, 확인해 볼 것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놀랍고 재미있는 것은 기도 시간에 이 작업을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앉아서 마치 아빠 앞에 아이가 이야기 하듯
자신 안의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면 된다.
심지어 자신을 얽어 매고 있었던 과거의 어떤 시공간을 접하게 되었을 땐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풀어 놓는 것이다.
그렇게 분심을 알아차려 가다 보면 그 분심들에 가려져 있던 내 안에 하나님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분심은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분심에 끌려 다니기 보다 그 분심의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
분심은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나면서도 우린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같으면서도 금세 자신의 생각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러다보며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에 급급하기 마련이다.
만약 기도를 통해 분심을 알게 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진솔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또한 사람과의 진실된 만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람세움 > 교육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마음기도3_분심의 종류(1)  (0) 2009.02.06
예수마음기도2_기도 방해꾼  (0) 2009.01.25
자녀 양육에 대한 시 한편  (0) 2008.11.02
그대는 활  (0) 2008.09.22
갈등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2).  (0) 2008.03.27
블로그 이미지

dols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