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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래로 여름 뿌리기사역, 겨울 물주기사역, 성경통독에 참여해 오고 있다.
무엇보다 '사역정신'을 배웠는데, 교회에서나 삶 속에서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조병호 목사님께, 그리고 동역자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여름 뿌리기 사역














겨울 물주기 사역




문화마당 다서연(요즘은 다해사랑콘서트)

성경통독에서 스텝으로 섬기며...훈희와

고락을 같이 했던 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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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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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주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진행된 한시 여름 뿌리기 사역에 다녀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나는 선발대로 갔으니 일요일부터 시작한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인데, 사실 일주일을 해 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한 번 하고 나서 선뜻 또 가겠다는 생각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난 95년부터 빼먹지 않고 해오고 있다.
안 빠지고 할 수 있는 비결은... 이 기간에 더 중요한 스케줄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그 것보다는 사역에 가는 것에 대해서 갈까 말까 고민을 하지 않는데 있을 거다.

아무튼 올 해도 300여 명의 사역원들이 신원면을 중심으로 정말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난 본부에서 사역을 했는데 주로 차량 배차를 담당하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주방 업무를 도왔다.
그래서 어르신들이나 아이들과의 질척한 만남의 이야기들은 별로 없다.
대신 전체적인 흐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느낌들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사역의 횟수를 더하다 보니 이제까지 해왔던 사역들과의 다른 점들을 보게 된다.
이번 사역의 특징이라면 지난 어떤 때보다도 사역자들이 어르신들에게 받아오는 것들이 많았다는 거다.
오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과일과 야채들, 음료수에서 밑반찬들까지.
목사님께서 밤 시간에 사역자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은 것들이 주방에 줄줄이 들어왔고,
운전자들이 차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내릴 때 비닐 봉투를 들고 내리는 모습도 예사였다.

서양 격언에 ‘가난한 사람은 선물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다. 신원면은 정말 가난한 곳이다.
들이 없이 산과 골짜기뿐이어서 풍요로운 소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비닐하우스라고 했는데,
정말 신원면에는 눈을 씻고 봐도 비닐하우스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신원면의 특산물은 밤이다.
결국 산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밤나무를 심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선물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마음이 따듯하다는 뜻일 것이다.
뭔가를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나쁘게 볼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마을에 가면 그 분들의 마음에 우리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행여 마을잔치에 초대되어 오시더라도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고 일어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사역 중에 하나는 나가시는 분들을 막아서는 일이었다.
어떨 때는 밟고 지나가시라고 흙바닥에 누워버리면서까지 제재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분도, 정말 한 분도 먼저 일어나서 나가시려는 분이 없었다.
그만큼 당신들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주고서는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오랫만에 마을잔치의 마지막 순서인 워십과 큰절까지 할 수 있었고,
곧바로 차량 배차를 위해 뛰어 갈 수 있었다.

격정적인 한 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 끝났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난다.
내년에도 내가 이런 현장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든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사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 한 것처럼 ‘꼭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옷도 갈아입으면서, 모자도 쓰고, 매일매일 씻어 가면서, 쉬어 가면서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도라는 것이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지나가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칠 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전도라면 한 사람의 긴 삶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긴 여정을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려 내려면 그만큼 긴장이 필요하고,
절제와 헌신을 기반한 눈물과 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략해 버리고 단순히 복음의 전파라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릇 없이 음식을 들고 가는 것과 같은 형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 준비된 그릇, 주인들이 받아먹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 되어
복음을 담아 가는 집약적 기간이 바로 일주일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땀 흘림을 마다하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긴박감을 갖고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이리라.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 번 더 했다는 그래서 계급장이 늘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나만의 편리를 찾고, 나의 역할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횟수를 더할수록 뭔가 더 깊어지고,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반대로 가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06.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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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학살’ 거창에 18년째 복음 씨앗… 700여명 숨진 슬픔의 땅                  국민일보 2006.8.21


경남 ‘거창 양민 학살사건’ 현장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장위동교회 불꽃교회 주안장로교회 순복음경동교회 하이기쁨교회 한시미션 등의 사역자 및 교인들은 한시기독학생연합,숲과나무교사모임 등과 공동으로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거창군 신원면과 남상면 및 산청군 차황면 일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거창 신원면은 1951년 2월 10∼11일 공비토벌 중인 국군들이 죄 없는 양민 6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한 곳. 이 때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마을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또 얼마 전 수해까지 당해 지역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2005년 현재 산청군과 거창군의 복음화율은 각각 6.9%,9.3%에 불과하다. 이번에 기독인들의 대규모 방문을 받은 현지 주민들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면서 “특히 노인들을 위해 일일이 안마를 해주는 기독 청년·학생들의 해맑은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고 감격해했다.

‘뿌리기 사역’이라고 명명된 이번 활동을 위해 350여명으로 구성된 연합팀은 5개월 전부터 기도회를 갖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18년째 경상도 및 전라도 지역에서 ‘뿌리기 사역’을 해온 한시미션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활동기간 중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로잔치 노천성경학교 수요찬양예배 축호전도 청소년캠프 등을 마련하고 비지땀을 흘렸다. 국악팀은 마을회관이나 정자나무 밑에서 가야금 피리 해금 태평소 장구 등을 연주하며 주민들에게 흥겨운 무대를 선사했다. 한중이혈건강요법학회 회원 및 이·미용팀은 의료 및 이·미용 봉사를 담당했다. 화요일 경로잔치에는 400여명,수요찬양예배에는 500여명,금요일 마을잔치에는 800여명의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등 높은 호응도를 보였다.

이번 활동에 참여한 소프라노 민숙연(하이기쁨교회 집사)씨는 “하나님 기쁨과 이웃 기쁨을 실천하는 장에 동참한 것만으로도 신앙적으로 큰 도전을 받았다”며 “복음을 거부하던 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전도를 위해 땀 흘리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병호(한시미션 대표) 목사는 “기독인들의 선한 행실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잔잔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 뿌리기 사역의 주 목적”이라면서 “복음의 혜택에서 소외된 마을의 주민들을 섬기는 이 사역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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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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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16. 19:50
지난 주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한시뿌리기 사역을 다녀왔다.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으로 작정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도시에서 살았다면 훌쩍 떠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농촌의 특성상, 특히 요즘 우리 집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일주일이나 집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농사라는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좀 다른 땀 흘림의 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여름뿌리기사역에 있어서 나의 사역은 단연 트럭사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주된 모임 장소와 주방이 멀고, 잔치하는 곳과도 좀 떨어져 있어서
짐들을 사람들이 들고 나를 수가 없기에
내가 가지고 간 트럭이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주방의 물품들을 나르고, 천막들과 음향시스템들을 나르고, 양조장에서 먹을 물 받아 오고,
쓰레기를 치우는데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특히 장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까운 진(한 마을을 담당하는 사역의 최소단위, 약 10명으로 구성됨)의 진원들을 화물칸에 태우고 이동하는 것 까지 해야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다른 진의 진원들이 트럭을 타는 진을 부러워했단다.
사실 승합차에 타면 덥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트럭의 화물칸은 탁 트여서 시원하기도 하고, 둘러앉아서 이야기 나누기도 좋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역에서도 변함없이
선발대와 차량배차를 담당했는데
아무래도 횟수를 더할수록 요령만 느는 것 같다.
특히 차량배차는 내 말이지만 ‘아나운서’처럼 본부에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주면
그것을 들고 조금 수정해서 발표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차량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들고 날 때야 어느 마을로 갈 것인지 정해주는 것은 내가 했지만,
아무튼 2%부족한 사역자였다.

무엇보다 참 좋은 사람들을 집중해서 만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신들의 몸이 더러워지는 것쯤은 개의치 않고 몸 던지는 사람들.
땀과 비에 몸이 젖지만 그것을 장애로 여기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
자신의 몸의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무시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뿌리기사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주일의 구별된 시간, 삶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을까?

200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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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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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6.

'복음 안에서 동서 화해를'(땅에쓰신 글씨)에 실린 글

아영으로 가는 마지막 차량에 승차했다. 1시간 30분 가량 어르신 모시기 작전의 마지막 차량이 백전에서 출발한 것이다.
백전초등학교 앞에서 쩔쩔매며 어르신들을 대형버스에 모셔야 했다. "어르신, 시원한 차 안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단순한 말 만으로…. 순순히 차량에 탑승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면 가지 않겠다고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예정대로 차량에 탑승하시고 출발할 수 있었다.
사역을 오면서 내내 고민이 있었다. 선발대로 와서 작업을 할 때나 잠을 청할 때,"내일 과연 어떤 말씀을 드려야 어르신들께서 아영으로 순순히 가실까?"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목사님께서 어떤 말을 우리들의 입에 넣어 주실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목사님의 제안은 "납치"였다. 그냥 모시자는 것이었다.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말고, 차에 모시고 달려 버리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데에 부담이 없어졌다.
정말 어르신들을 만나 "내일 저희가 모실게요. 백전초등학교 아시죠? 거기서…."이렇게 끝을 흐리기만 하면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상상하시면서 오마고 허락하셨다. 생각보다 쉽구나.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백전초등학교를 그냥 지나갈 때 승합차 안에 타고 계신 어르신들의 어리둥절하신 모습, 왜 초등학교로 안 들어가고 대형버스에 승차하라고 하는지 의아해하시는 어르신들, 개중에는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마냥 좋아하시고, 고마워하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승합차 아홉여 대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경계를 넘었고, 대형버스도 두 번 넘었고, 마지막 승합차가 가고 있는 것이다. 양천.음천 마을에서 나온 차였다.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정원외 승차를 하고서, 어르신들 사이사이와, 문에 붙어 앉은 채로 차는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차일까? 그 안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전초등학교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는 직진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백전초등학교로 간다. 그러나 차는 좌회전을 했다.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88고속도로와 나란히 나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으로 난 국도로 들어선 것이다. 사역자들의 긴장과 영문을 몰라 하시는 어르신들.
"와 이리 가노?", "어데 가는데?, "백전초등학교 가는 거 아이가?" 차 안은 술렁거렸다.
차량 배차를 맡았던 나로서는 마지막 차라는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몇 안 되는 사역자들은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며, 그 분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저희가 좋은 데로 모실게요."라는 말과 웃음 공세, 그리고 주무르기로….
한 어르신이 불안해하시며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그 때 옆자리에 계신 어르신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좋은 구경 다 시키네, 고마와라. 우리 이 차 타고 서울까지 가버리자!" 하시며 옆에 긴장한 어르신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와 불안한 게비지?""별 소리를 다 한다. 불안하기는…."
위기가 넘어갔다. 금세 길 옆으로 누렇게 얼굴을 드러낸 벼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함양의 그것보다 더 빠르다고….
이렇게 여기를 지났을 십여 대의 차들이 이런 긴장감을 경험했을까? 주여, 감사합니다.
차는 무사히 아영중학교에 도착했고, 아무 갈등도 반목도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잔치 마당에 함께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렇게 사역은 문이 열렸다. 영.호남을 넘나들며 벌어진 경로잔치와 마을잔치,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과 율동으로 한 팀이 되었던 노천성경학교, 그리고 청소년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녹아드는 사랑의 몸짓이 되고자 했던 부족한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또 다시 은혜로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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