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에 군대 폐지를 외치며 알몸시위를 한 강의석!

강의석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해진 친구다.
이름만으로도 잘 알려진 기독교 사학에서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서울대 법대에 다닌다고 한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에 강의석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누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이 옳으냐, 지금 시대에서 할 수 있는 얘기냐를 따지며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버리는 풍토가 사라지고,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진정한 양심의 자유가 아닐까.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의사표현도 못하고, 다수가 가는 길로만 조용히 가려는 것이 오늘 우리의 초상이 아닌가.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눈치 보며 숨죽이고 순응하며 말도 잘 못하고.

누군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받아 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식을 죽이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
또 그런 생각과 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도 말아야 겠고.
그래서 저렇게 알몸으로 군대를 없애라느니 쇼를 해도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누가 알몸으로 시위를 했다고 호들갑을 떨게 되지도 않겠지.
아직 그렇지 못하니 강의석이 이런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알리고도 남는 것이다.
맞다 틀리다는 논의를 넘어서 자유롭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려본다.
맞으면 어떻고, 또 틀리면 또 어떤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잴 수는 없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지금 옳다고 철통같이 믿고 있던 것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을.

그러니 우리 '아!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별 일 아닌 듯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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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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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거룩
레13장
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의 중요한 업무 하나는 백성들의 피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혹시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겼을 때는 지체 없이 제사장에게 가서 그 곳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차에 따라서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것이 정한지 부정한지를 판가름내 주어야 합니다.
절차에 따라 꼼꼼하게 관찰한다는 것은 환처가 어디이든 그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거의 만지다시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제사장이 자신을 '난 거룩한 제사장인데, 이런 더러운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기피한다면 아마 전염병으로 변해 백성들에게 큰 재앙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일은 단지 한 사람의 피부병을 살피는 것이 아닌 전체 백성의 생명을 돌보는 일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의 거룩한 직임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곳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물이 없어 잘 씻지 못해 발생하는 피부병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큰 재앙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을 면하게 하시겠다는 깊은 배려하심이 머무는 곳이 바로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의 거룩한 일은 바로 질병으로 더러워진 살갗을 살피고 만지는 일인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이 성전에서 멋들어진 제사를 집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요사이 목회자들의 다수는 여전히 열악한 삶을 살고 있지만(이 표현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눈에 띄는 몇몇 교회의 목회자들이 끝없는 영광과 힘을 좇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과거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으로 정당화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한 쪽으로 너무도 멀리 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그런 소위 출세한 목회자들의 모습을 선망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빨리 그쪽으로 길을 정하고 그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이 열어 두신 길이 아님을, 거룩한 사역의 길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아파하는 한 사람을 찾아 그가 온전해 질 길이 어디에 있을 지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구유에 오시고, 먼지 날리는 길을 걸으시며, 냄새 나는 옷을 걸치셨지만
그 분이 하신 일들, 만난 사람들, 가신 길로 인해 거룩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들만 탓할 일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말씀 좋은 교회를 찾아 다니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만 '나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곪아 터진 부분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은총 안에서 산다는 것은 단지 홀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돕고 힘을 주는 관계의 형성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그 안에서 거룩함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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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받은 기간
레12장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남아를 낳으면 - 7일 부정, 33일 후 산혈이 깨끗하여 짐
여아를 낳으면 - 14일 부정, 66일 후 산혈이 깨끗하여 짐
번제(일 년 된 어린양)와 속죄제(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림
힘이 양에 미치지 않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세 마리

하나님께서 출산을 한 여인이 남아든 여아든 정해진 기간이 지나 산혈이 깨끗해 질 때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규례를 주십니다.
산혈이 깨끗해지고 속죄제를 드리는 것인지, 속죄제를 드림으로 산혈이 깨끗해지는 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정해진 기간에 맞추어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남아를 낳았을 때와 여아를 낳았을 때의 기간이 다른 지에 대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별한 신체와 관련한 규례는 15장의 유출병과 이곳에 있는 출산과 관련되어 등장합니다.

이 율법대로 한다면 출산한 여인은 최소한 40일에서 80일 동안은 분리된 생활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격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출산한 여인에 대한 배려를 하신 것은 아닐까요?
요즘 말로 하면 몸을 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주신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남아는 40일, 여아는 80일이라는 문제가 또다시 나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아를 낳은 것으로 특별히 산모를 더 쉬게 해 줄 필요는 없어 보이니까요.

이 문제를 원죄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이도 있는 것 같은데,
가볍게 성경을 읽어 가면서 그런 복잡하고 고차원적이기까지 한 추론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동체 내에서 여인이 출산을 했을 때의 규례를 정해 주심으로
여성들이 감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공식화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은 아이를 출산했을 때, 지켜야 할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여인에겐 보장받은 기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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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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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레11장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육지의 모든 생물 중 먹을 만한 생물 -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
먹지 못할 생물 -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는 집승(낙타, 사반, 토끼, 돼지)
물에 있는 것 -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
새 중 가증히 여길 것 - 독수리, 솔개 물수리, 말똥가리, 말똥가리 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타흐마스, 갈매기,
                                새매, 올빼미, 가마우지, 부엉이, 흰 올빼미, 사다새, 너새, 황새, 백로, 오디새, 박쥐
혐오할 곤충 -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나는 것
먹을 수 있는 곤충 - 앞의 조건에 뛰는 다리가 있는 것(메뚜기 종류, 베짱이 종류, 뀌뚜라미 종류, 팥중이 종류)


이쯤에서 거룩이라는 말을 정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룩의 정의를 하기 전에 제 경험담 하나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이 특심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금요 철야기도회를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다녔습니다. 학기 중에는 가끔 가고, 방학 때는 거의 매 주 갔던 것 같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순복음교회의 특징은 뜨거운 기도에 있습니다. 2,3시간여의 1부 예배가 거의 12시까지 진행되는데 마칠 즈음 뜨거운 통성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마치는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쉬는 순서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 때가 쉬기에 적당해서 늘 밖에 나와서 어묵 같은 것을 사 먹고 들어갔습니다. 어느날 쉬는 시간에 나가려고 하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께서 아무래도 순복음교인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어디서 왔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하~ 그 거룩 거룩 하는 데요!' 하는 겁니다. 물론 평소 장로교인들의 모습을 거룩거룩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듣는 것은 좀 당혹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제 입에서 나온 말은 ' 거룩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였고, 그 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고 들어와서는 좀 미안한 마음에 좀 전에는 죄송했다고 사과를 했고, 아마 그 아주머니도 겸연적어 하시며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에까지 가서 철야집회에 참석할 정도의 청소년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거죠.

아무튼 그 당시 저는 거룩에 대한 분명한 뜻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그 뜻은 '죄와 분리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 레위기 11장에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짐승들을 말씀하시며 요청하시는 거룩의 뜻이
제가 어린 시절 배워 알고 있었던 그것과 같은 것일까요?
거룩의 뜻을 사전적으로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거룩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것이 더 정확한 뜻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 13:2)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안식일을 명하시며, 모세를 만나 신을 벗으라고 하시며, 유월절을 재정하시며, 또 위에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성막과 제사장과 관련하여 반복해서 거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거룩이라는 단어는 사람과 사람 간에서 나온 말이 아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어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사람 쪽보다는 하나님 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단지 깨끗하다 더럽다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셨을 때 깨끗할 장소가 어디며, 깨끗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거룩은 더럽고 추한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장소와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은 수평적인 비교를 통해 어떤 특별함이 아닌 것입니다.
안식일이라는 한 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날을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기에 거룩한 것이고,
모세가 선 땅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곳에 계셨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고,
처음 난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지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부정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어떤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의 상태가 부정한 것입니다.

부정한 동물과 정한 동물을 이야기 할 때
깊이 들어가면 그것의 생물학적 이유들을 뒷받침해서 논의를 진행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것들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복을 입을 때 거룩한 옷을 입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식생활에 대한 규례들을 받을 때 그 음식은 거룩해 지고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짐승이 어떠한 것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복잡해 지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것은 거룩하고, 어떤 것은 정하다 혹은
어떤 사람은 죄인이고, 어떤 사람은 의인이다 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하지는 얘기입니다.
예를들어 주초의 문제만 놓고 봐도 어떤 교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고 또 어떤 교회에서는 정죄가 됩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붙들고 이러쿵 저러쿵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이 어떤 것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잡아가는, 그래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이가 되어
결국 하나님께서 '거룩하다'라고 인정하는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존재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된 채로
자신의 어떤 것을 통해 거룩함에 이르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외형을 꾸미고, 자기식의 신앙생활의 틀을 갖추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음으로 아무리 최고의 길을 가더라도 격하게 표현해 부정한 상태하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고,
그 만남을 전제로 한 준비의 과정이 있다면 지금 아무리 형편없는 상태라 해도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가 될 수 없다면 거룩한 곳이 아니며
공터 한 모퉁이 볼품없는 곳에 천막을 친 곳이어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소냐 돼지냐를 가르듯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정·부정을 가르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님을 오늘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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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습니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수 없습니다.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돌아가진 않으며, 어제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 활로 쏘는 살아 있는 화살.
사수는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당깁니다.
그의 화살이 보다 빨리, 멀리 날아가도록.
사수의 손길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므로.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
예언자(The Prophe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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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 주보를 만드는데, 한 쪽 면에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될만 한 글들을 싣고 있다.
내가 쓰기도 어렵고 하여 이 책 저 책에서 글을 뽑는다. 사실 쉽지 않다.
오랜만에 좋은 글을 발견했다. 언젠가 들어보고 감탄을 했던 것인데, 전문을 발견한 거다.

얼마 전 어떤 엄마가 자신의 딸 얘기를 하면서 '내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을 듣고는
속으로 이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이다.
물론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대는 활'이라는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붙여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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