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질서_또 하나의 약자 보호
레18장
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이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땅을 더럽히는 일-근친상간
어머니(아버지의 다른 아내), 누이, 손녀, 외손녀,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 아내의 자매
여인과 그 여인의 딸 혹은 손녀나 외손녀 함께 취함 불가, 자녀를 몰렉에게 주는 일, 남자가 남자와, 짐승과 교접

예전에 어떤 집에서 개를 키웠다고 합니다.
암컷이 새끼를 낳았고, 수컷인 새끼가 자랐는데
어느날 주인은 애미와 새끼가 교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놀란 이 아저씨는 몽둥이를 들고 둘 다 죽여 버리겠다고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팔뚝을 잡고 말리며 '그러니까 짐승이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개를 길러 보면 아무리 커도 최소한 지 새끼는 알아보는 것 같은데,
아마 그 어린 수놈이 정신 줄을 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짐승과 사람의 다른 점은 짐승은 온전히 본능적으로 산다는 것이고,
사람은 본능이 있지만 이성적으로 조절하며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기 몸뚱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질서를 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짐승처럼 사는 일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몸과 마음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만 더럽혀진 것이 아니라 땅까지도 더럽혀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며 지금은 더렵혀진 가나안의 사람들을 쫓아내시지만
강조점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전에 경종을 울리시는 것입니다.

좀 다른 측면으로 보면 성적 문란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힘이 약한 남자들은 그가 일가친척이라도 그에게서 자신의 아내를 지킬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작은 자들의 슬픔과 한이 쌓이는 사회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이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해 낸다는 말씀은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문제는 전체 사회를 지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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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주인
레17장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영종도에 있는 큰집에 놀러갈 일이 있었습니다.
큰어머니께서 갯벌에 조개를 잡으러 가셔서 저녁에 마중을 가려고 우물가를 지나가는데
동네 어른들이 개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간을 잘라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의 잔인함이라...'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인지 저는 익힌 것이라도 간을 먹지 않습니다.

뭐 지금 시대에 피를 먹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논의는 별 의미는 없어보입니다.
혹자는 짐승이 죽을 때 피에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그런 뜻에서야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시는 지 그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 되겠죠.

하나님께서 노아의 시대로부터 육식을 허락하셨지만, 그 때도 피를 먹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그 피는 곧 생명을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짐승을 취할 때 부득불 그것의 생명을 빼앗을 수밖에 없지만,
그 생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피를 구별함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피를 구별해서 드리는 행위나,
짐승을 잡을 때 피를 땅에 쏟고 흙으로 덮은 후 고기를 먹도록 하신 것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이 아닌지.
피로 상징되는 생명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또 자신의 생명, 이웃의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것임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하신 생명 이상 무엇을 더 하나님께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허락하신 것들을 마음껏 누리되
그것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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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이유
레16장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에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삶(生)이면서, 동시에 죽음(死)을 의미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시기에
인간이 그 하나님과 마주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동기와 상관없이 비극은 일어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의 잘못,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주어지는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기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어 하셨지만,
그러다가는 사람들이 죽을 것임을 알고 계셨기에 최대한 안전한 방법의 하나로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쉽게 접근하도록 노력하셨지만
이미 10장에서와 같은 사건을 거치며 더 분명한 지침의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16장의 내용은 그런 이유 때문에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사람, 대제사장이 죽고 사는 문제는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중요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구약 시대처럼 짐승을 잡으면서 복잡하고 힘든 제사를 드리지는 않지만
나름 짜인 순서에 따라서 예배라는 것을 드립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큐티(묵상)를 하더라도 자기만의 순서를 따라서 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존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오로지 사람을 위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만남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얘기입니다.
성막에 대한 얘기에서나 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말씀을 드린 내용을 또다시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복잡한 절차를 만드실 의지가 없으셨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주시려 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 둘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좀 더 단순한 길을 열어가는 그리스도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얽히고설킨 것들을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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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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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병'에 와서 멈춰버렸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이 유출병 이야기를 가지고 너무 '영해'를 한 나머지
교회 공동체 내에 유출병이 걸린 것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다는 식의 글을 올려놓은 것도 보았습니다.
때로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끼워 맞추기 식으로 해석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함정이라기보다 습관이고,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 알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혹시 저도 그런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습니다.
어쨌든 15장만 지난다면 레위기의 가장 험한 능선을 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진솔한 공동체
레15장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정상적이지 않게 몸에서 체액이 흘러나왔을 때
당시로서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 잘 알 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병리적인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공동체를 위태롭게 할지도 추측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정하다고 하시고, 절차와 기간을 정해주십니다.

결국 이 역시 제가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정함과 부정함을 관계의 측면에서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줄 수 있는 상황은 선하고 정한 것이고,
반대로 그럴 수 없는, 때로는 그것을 판단할 수 없을 때는 일단 거리를 두고 부정하다고 하며 안전을 기하도록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나병에 대한 진단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출병이 있을 때도
부정하다고 하며 특별한 절차를 밟는 것은 그 사람을 정죄하고 죄인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사자와 함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단이 사라질 때 공동체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서로를 향한 진심어린 관심의 부재, 또 속내를 깊이 감추는 데서 야기됩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역할은 공동체를 보다 진솔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더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없는, 또 어떤 허물이든 정화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전하시는 율법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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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복음
레14장
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나병으로 판정을 받은 사람이 정하게 되었을 때 치뤄야 하는 절차를 명하십니다.
나병환자를 다루는 근본 이유는 그를 격리하여 공동체 전체로 질병이 번져가는 것을 막는 데 있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질병으로인해 영구히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데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환자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절차를 본 장에서 설명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규례를 주시는 이유는 공동체와 분리하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려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제사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게 하지만
제사를 통해 살아 마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레위기를 '레위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앞의 맥락에서 봤을 때 좀 다른 말로 하면 '살리는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을 살리고, 전체 공동체를 살리는 말씀이 바로 레위기가 담고 있는 율법인 것입니다.
사실 율법의 정신은 어렵고 무거운 짐이 아닌 백성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율법은 일부 계층에 의해 오용되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닌 죽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의 제도와 교리, 관습들도 그 의도와 달리
일부 사람들에 의해 오용될 때 사람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의 말처럼, 교회는 '늘 개혁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워 살아가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병 판정을 받고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떨어져서 보낸 죽음같은 시간을 벗어나
제사장의 손에 이끌려 정결을 위한 절차를 밟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기쁨을 모든 이들에게 전할 책임이 오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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