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는 길 32.4km(2) 

어, 저기 소가 넘어가네~


푸른 초장, 맑은 시내물 가로~



사모스 수도원Monasterio de Samos,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수도원으로 6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수도원 부설 알베르게




높이 25m의 1000년 된 사이프러스 나무








알베르게 앞 오른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은 순례자 메뉴(오늘의 메뉴). 샐러드도 풍성하고 고기 맛도 좋았다.


사모스로 오는 길, 이제 30km를 넘게 걸으며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은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미는 자동적인 반복이 연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지만 가야한다는 의지가 몸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앞으로 더 앞으로 나가니, 멈추어버린 몸이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한 발 한 발을 내 디딜 때마다 그 느낌을 몸으로 받으며 생생하게 걸어야 하는데, 발도 무릎도 골반도 스틱잡은 손과 팔도 마비되어 걷고 있는 거다. 그렇기에 몸의 마비에서 깨어나는 것이 순례의 또하나의 과제가 되는 것 같다. 걷고 있다고 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소통하며 걷는 것이 잘 걷는 것이 되겠다. 그래서 몸에 부치도록 긴 구간을 잡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몸의 상태를 봐가면서 나아갈 길을 잡아주어야 한다.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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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늘 길 32.4km(1) 

길을 잘못 들어 차도 위를 한참을 내려가면서 맞는 길인가 초조해 했는데, 지도에 나와있는 지명 리냐레스를 보자 얼마나 반갑던지, 카메라를 자동으로 꺼내서 한 컷 담았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노란 화살표이다.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있는 지방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어떤 순례자가 갈리시아는 영국보다도 비가 잦다는 얘기를 했는데, 비도 그렇고 오전엔 안개가 많이 끼는 것 같았다. 산 로께 고개Alto San Roque(1,270m)에 있는 순례자 기념물이다.


현지인들이 손수 만든 지팡이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뽀요 고개(1,335m), 산띠아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났다.



초장으로 출근하는 소떼. 멀리 보이는 구획지어저 있는 풀밭들이 소들을 위한 초장이다. 풀을 적당한 크기로 키워 옮겨가며 먹이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소들이 풀을 뜯기위해 초지로 향한다. 사람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개들이 소들에겐 얼마나 사납게 짖으며 몰아가던지 재미있게 지켜봤다. 소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 지 걱정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풀을 최선을 다해 뜯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업이다. 먹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순례길 많은 에너지 소모 때문인지) 저녁을 그렇게 많이 먹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뭔가를 위장에 넣어줘야 한다. 어제 먹은 것이 소화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안 먹을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지만,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바로 유목민적 삶이다. 대개의 삶이 어제의 수고로 이룬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그것이라면 유목민은 거의 오늘에 집중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대로 살아갈 집을 튼튼한 재료로 짓고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축적하기위해 내 땅 네 땅을 구분하고는 스스로 능력치 안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정착민이라면 하늘이 허락한 것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유목민일 수 있겠다. 정착민이 지키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면, 유목민은 이동하고 변화에 익숙한 진보적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겠다. 
단편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 것이지만, 까미노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까미노는 순례자들을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으로 초대한다. 어제의 어떤 것, 몇 살인지 직업이 뭐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가 아닌 오늘의 한 걸음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오늘 길을 찾고 먹을 것을 구하고 숙소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유목민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오늘 걷게 되는 길에 자신을 맞추고 또 새로운 숙소의 새로운 조건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상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일을 하게 되지만 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날은 새로운 날이 되지 않을까. 어제 했기에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삶, 사역도,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까미노의 유목민처럼...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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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오세브레이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1층의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곳을 배정받고,

비교적 늦게 도착한 나는(90번째) 2층의 단층 싱글침대방에 배정을 받았다.

함께 올라간 외국인 여성과 럭키를 외치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1층에서 올라온 어떤 아저씨는 1층에 가봤냐고 하면서 화를 내고 내려갔다. ㅋㅋ



까미노에서 총 다섯 개의 무지개를 봤는데, 오세브레이로에서 산을 중심으로 양 쪽에 두 개를 목격했다.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럽던지 서너 시간 동안 맑았다 흐렸다 비가 내리고 다시 맑아지는 등 정신이 없었다.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세워진 연도를 기준으로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지역 교구 사제였던 엘리아스 발리냐 삼뻬드로가 유럽에 까미노의 의미를 역설하고 노란 화살표 제안하는 등 현재의 까미노를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펼쳐진 각 나라의 성경들 중 한국의 공동번역 성경이다.





오세브레이로는 산 정상에 위치해 풍광이 좋고, 또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커서 안개가 꼈다가 다시 비가 오다가 또 맑아지는등 몇 시간 동안 여러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세브레이로를 중심에 놓고 양쪽에 나타난 무지개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 곳엔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고, 그 곳에 있던 사제가 유럽 전역을 돌며 까미노와 그 상징인 노란 활살표를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교는 그 지역의 둥그런 모양의 초가집을 보존하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성당은 프랑치스코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성당의 미사와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성당과 관련해서 전해내려오는 전설인데, 성찬식 빵과 와인이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고, 또 마리아상이 그것을 보려고 고개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뭔가 냄새가 난다. 당시에 가톨릭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성당을 띄워볼려고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으로 인해 또 이 곳이 얼마나 번성할 수 있었을까. 면제부를 구입하면 지옥에 내려간 조상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가톨릭 성당들 곳곳에서 이런 전설들이 전해내려오는데, 무지한 시대에 유용했던 평신도 통제방식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지금도 그런 이야기에 혹해서 그 곳을 찾아와 기도 한 번 더 하는 이들도 있으니, 꼭 과거의 얘기만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것이 인간 내부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면 현실에서 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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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2) 








캐나다인 순례자 

언제부터인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캐나다 남성이 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서로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외국사람을 찍은 사진이 없다고 나보고 포즈를 취해보란다. 나는 이미 슬쩍슬쩍 이 사람 사진을 찍으며 왔는데...


라 파바로 가파른 길을 오른 후에는 능선의 탁 트인 길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북에는 라 파바에서 묵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산을 오르다 중간에 멈춰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거리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사진에 보이는 라구나 데 까스띠야를 지나 오세브레이로를 향해 계속 걸었다.


이제부터 갈리시아라는 표지석. 갈리시아는 까미노의 마지막 지방으로 주도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이다.
여전히 걸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지만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감격스러운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기차를 타는 것보다, 버스나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잘 볼 수 있다. 빠르면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겠지만 놓치는 것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느리기에 주변은 더 천천히 지나간다. 걸을 때도 너무 빨리 걸으면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할 때 주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고, 목적지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까미노 최고의 유익은 걷는데 있다. 가장 느린 수단인 걷기로 순례하기에 많이, 자세히, 깊이 보게 되니, 또 생각도 그에 잇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도, 자연도, 마을도, 도시도, 동물도 이야기 거리가 되고, 생각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걸을 때도 속도가 붙으면 멈추기 쉽지 않은데, 자전거는 말해 뭐하랴. 까미노는 그래서 걷기위한 최적의 길이고, 또 걸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임에 분명하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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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차, 비야프랑까에서 오세브레이로 가는 길 30.4km(1) 




내리막이 얼마나 급한지 아래에 있는 마을 뜨라바델로Trabadelo가 바로 발 밑에 있는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까미노에서 심심치 않게 지팡이와 가리비를 파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말을 이용하려면 연락하라는 안내문이 오세브레이로까지 힘든 구간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났다. 비아프랑까를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측 오르막을 오르는 까미노가 있다. 어두운 시간에 몇 안 되는 순례자들이 오르다 결국엔 앞뒤에 아무도 없는 산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길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면서 걷다가 저 만치 멀리서 내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안도하며 가던 길을 제촉했다. 그런데 안심은 얼마 가지 않아 분심으로 바뀌었다. 까미노 최악의 내리막을 만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긴 구간은 아니었지만, 무릎의 고통을 참아내는데 한계를 느끼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리막은 가혹하다. 인생도 그렇겠지... 내리막에서 중심을 잃으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일수록 더 함께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잡고 있는 지팡이를 더 꽉 붙잡고, 다음 목적지를 위안 삼아 힘을 내야한다.
201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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