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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어난 재난의 상황을 놓고 말이 많다.
일단은 함께 고통을 나누자는 태도와 말들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곳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 혹은 징계 또는 경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은 정말 기가 막힌다.
그 말을 특별히 목사님이 했다는 것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다.
그런 말을 하면서 아마도 자신들이 우상숭배의 땅인 일본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예언자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성경을 좀 다시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성경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시겠지만).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언했지는 지를 좀 다시 공부하시라는 것이다.

예언자의 예언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직접 그들에게 말했다.
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예언자들의 헌신이다.
자신의 모든 삶을 그들을 향해 고스란히 내어 놓고서 피를 토하며 하는 말이 예언이었다.
그러면서도 예언자들은 자신이 전한 말이, 또 해야 하는 말이 너무도 무섭고 가슴 아파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애끓는 마음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눈물을 머금고 전한 사람들이 예언자들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예언자의 심정은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에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언자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함께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소위 예언을 하는 것처럼 말하는 목사님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냉정하다. 최소한의 인정도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이번 일이 하나님의 징계이고 경고라고 치자.
그러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왜냐면 일단 징계가 내려 망하게 되었을 때엔 예언자의 역할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은 얘가를 부르며 애통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다시금 회복될 것에 대한 '소망'을 주는 역할을 했다.
 
지금 그 목사님들의 모습에서 위로나 소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을 하는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가 더 부각이 된다.
일본을 향해서 우상숭배, 무신론, 물신주의라고 평가했는데,
최근 그 분께서 교회를 통해서 축적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위해 어떤 행태를 보이고 있는 지 다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돈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것
이것이 물신주의가 아니고, 또 역시 우상숭배가 아닌가?
더이상 하나님의 지키심을 믿지 못하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것은 무신적인 것이 아닌가?
어찌 그 분 한 분만의 문제일까?
그 교회도 그렇고, 최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한기총도 그렇고, 또 대부분의 교단의 정치 행태들이 그렇다.
누군가를 향해 하려고 하는 말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참다운 종교인의 길이고, 그런 사람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들 것이다.

수없이 많은 생명이 잠든 그 땅을 바라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함께 아파하며  울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말이 아닌 손과 발이,
침 튀기는 것이 아닌 눈물과 땀을 흘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나는 또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뭘 해야 하는 것인가? 나 또한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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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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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본문이 계속 예레미야다.
'생명의 삶'이 예레미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내내 어둡고, 결말 역시 마찬가지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기 때문이다.

부활절 후 성령강림절까지 기쁨의 50일에 왜 이 본문을 선택했는지 의아스럽지만,
예레미야를 읽으며 선지자 혹은 예언자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설교준비를 하며 써 보았던 예언자에 대한 생각들이다.

예언자의 설교(예언)는 듣기 거북하다.
예언자의 호소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래서...
예언자는 기존 권위에 도전한다.
예언자는 전통이나 율법의 길과 다르다.
예언자는 평화(잘 되고 있다고)를 말하지 않는다.
예언자는 다수의 편에 서지 않는다.
예언자는 자신이 한 말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예레미야의 슬픔).

예언자의 삶은 편하지 않다. 그래서...
예언자는 고통 가운데 있지, 편함이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다.
예언자는 온전히 하나님을 뜻을 담아내는 그릇이다(때때로 의지나 욕구가 없어 보인다).
예언자는 공과 사가 따로 없이 온전히 예언을 위해 사용된다(결혼, 가족생활, 의식주 등).

신학대학을 다닐 때 학교를 일러 '선지동산'이라고 했다.
다른 신학교에 가 보니 거기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정말 그 곳에서 선지자, 즉 예언자가 배출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목회자들이 스스로 혼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말은 예언자처럼 하기도 하면서 대접은 제사장으로 받으려 한다.
신학교가 배출한 것은 선지자가 아니라 제사장 쪽인 것 같다.
그러니 교회가 공의와 정의에 편이 아닌 힘과 돈의 편을 드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다수의 힘 있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맞다.
목회자들은 제사장의 자리에 서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예언자의 전통 위에 계셨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보면서 대제사장이라고도 하고,
예수님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한 명 한 명을 제사장이라고 하긴 하지만...
예수님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예언자가 아닌 제사장의 반열에 서려 한다.

가톨릭에서 매번 제사(미사)를 드리고, 신부를 사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넌센스인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의 전통을 잇는다고 하면서 사제라고 하다니...
그러나 문제는 목사들이 제사장인줄 착각하는 것이다.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 그대로 내심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도들 또한 제사장이 되어주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당연히 교회는 성전이 되고, 그 곳에서 들려지는 말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성전을 지키기 위한 말들, 예레미야를 적대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과 유사한 말들이 전해진다.

아이러니 한 것은 지금 가톨릭의 사제들이 예언자 노릇을 하고,
개신교는 목회자들은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거다.
웃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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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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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습니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수 없습니다.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돌아가진 않으며, 어제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 활로 쏘는 살아 있는 화살.
사수는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당깁니다.
그의 화살이 보다 빨리, 멀리 날아가도록.
사수의 손길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므로.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
예언자(The Prophet)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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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 주보를 만드는데, 한 쪽 면에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될만 한 글들을 싣고 있다.
내가 쓰기도 어렵고 하여 이 책 저 책에서 글을 뽑는다. 사실 쉽지 않다.
오랜만에 좋은 글을 발견했다. 언젠가 들어보고 감탄을 했던 것인데, 전문을 발견한 거다.

얼마 전 어떤 엄마가 자신의 딸 얘기를 하면서 '내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을 듣고는
속으로 이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이다.
물론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대는 활'이라는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붙여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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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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