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차, 까리온에서 모라띠노스 가는 길 30.1km 



까리온에서 이 길의 끝에 있는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약 17km 정도 구간엔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마을이 없었다.




지구상 어디에 이렇게 잘 정비된 트레킹 코스가 있을까? 노란 화살표는 말할 것도 없고, 산이나 들 가운데 순례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도로 옆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고속도로 ‘센다Senda’를 만들어 놓았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순례자를 위한 스페인의 최고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비록 도로 옆에 있어서 차량 소리가 소란하고, 지루한 길이지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다. 단, 자전거가 도로로 가지 않고 이 길로 달려 올 때 급하게 피해야하는 것을 빼고. 까미노 초반에는 자전거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비켜주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피로도가 높아져서 귀찮은 일 중 하나가 된다. 비켜주긴 하지만 한 마디씩 하는 거다. '도로로 가지!' 암튼... 어디 길 뿐만이겠는가.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는 숙소, 식당은 물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최고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여서 작은 마을 모라띠노스로 발걸음을 제촉해야 했다.












모라띠노스에 이태리 사람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의 저녁 메뉴였다.

스파게티를 많이 준다싶었는데 결국 본식이 햄을 얇게 썰은 것 같은 것에 셀러드를 곁들인 것으로 많이 부실했다.


201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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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차, 까리온 

까리온에 들어서는 길 옆,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예수상.



산따 마리아 성당에 부속된 알베르게인데, 들어서는 순례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료와 빵을 준비해 두었다.

까미노에서 거의 유일한 호의였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하다. 

루시아라고 한글로 써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던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수녀님이 있어 더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산따 마리아 데까미노 교회



맨 오른쪽 기타를 들고 있는 수녀님이 루시아이다.


까리온 Santa Maria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신부님이 모든 순례자를 불러 한 명 한 명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다. 개신교 신자인 젊은 친구와 함께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에겐 미사도 처음이었고 신부님의 축복기도는 더더욱 생소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눈짓으로 받아도 되냐고 묻는다. 우린 이미 카톨릭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니 신부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문제가 없지만 이 길을 걷는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이런 의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국교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균형감 있게 안내하고 있나. 이들이 마치 교회완 별개의 사건으로 마음 속 한 편에 접어두고 있다면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닫힌, 답답한 교회만 소외되는 것이 아닐까. 
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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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차, 보아디야에서 까리온 가는 길 26.1km



프로미스따에 있는 순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마르띤 교회.

1066년 이슬람교도를 물리치고 마을이 번성했을 때 지어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로

1900년쯤에 복원되었는데, 지붕을 받쳐주는 장식(사람, 동물, 신비로운 모티브 등 300여 개)으로 유명하다.




센다를 순례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농기구가 들어오지 못하게 까미노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까리온까지 6km, 이 날 한시간 만에 주파했다.



지루한 센다 저 멀리 까리온이 보인다. 치마를 입은 할머니 순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까미노 초반에는 20km 전후를 걷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까미노와 함께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몸도 무리를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숙소를 잡고, 빨래를 하고, 식당을 정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등 까미노의 생활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 늦게 숙소에 들어가면 그럴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고, 물집이 잡히거나 몸 이 곳 저 곳이 아픈데도 충분히 쉴 수 없게 된다.

까미노가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걷는 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그래도 나에겐 25km정도가 하루 적정 거리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로만 계속 걷게 되면 크게 정해 놓은 일정 안에 순례를 마치기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씩 더 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렵게 4~5km 정도 되는 한 구간을 더 걷게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몸의 한계를 넘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몸 한 편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걷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또다른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것이 걷기 중독, 까미노 중독이 아닐까. 30km 훌쩍 넘는 거리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 한동안 이런 중독 느낌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땐 26.1km 정도로 숙소에 들어가려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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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3)


메세따 지대에 오르자마자 뒤돌면 멀리 까스뜨로헤리스가 아련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벨지움 아주머니

처음엔 약간 까칠한 듯 했는데, 보면 볼수록 푸근한 분이었다. 아소프라에서 한국인 순례자들끼리 저녁을 지어먹다가 스파게티에 관심을 보이자 선뜻 크게 한 그릇과 포도주를 뚝 내미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었다. 특이한 것은 한국의 할머니들처럼 유모차 같은 것에 짐을 싣고 밀면서 까미노를 완주하신 것. 아저씨는 내내 물집으로 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너무도 기뻐 얼싸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산 니꼴라스 예배당과 알베르게, 건물이 주는 매력만큼이나 특별한 운영으로도 마음을 끌었던 곳이다.

더 가야해서 지나쳐갈 수밖에 없어 조금은 섭섭했다. 이 곳을 포함해 그라뇬 San Juan Bautista와 또산또스 San Francisco de Asis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 한 곳에도 머물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엔 엘 까미노, 보아디야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

아래 사진들처럼 잔디 정원과 작은 풀과 철로 만든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다.





메쎄따 구간을 걷다가 다시 내리막에 접어들 때, 저만치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사람, 길 위에서 참 작다. 그 작디작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하며, 서로 위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상이란... 대자연 앞에, 신 앞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어서 빨리 깨닫는 것이 지혜다. 그럴 때 '내'가 아닌 '그 분'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이미 처음부터 그 분만이 움직이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멈추지도 않고, 주변을 눈여겨보지도 않기에 오늘도 인생들은 깨닫지 못한다. 

20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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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 온따나스에서 보아디야 가는 길 29.5km(2) 




까스뜨로헤리스

로마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도시라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성을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가 세웠다는 설이 있을 정도니 참 유서 깊은 도시이다. 최근 더 특별해진 것은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가 이곳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 곳을 지난후 듣게되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간다면 꼭 이 곳에서 하루 이상 머물고 싶다.






까스뜨로헤리스를 벗어나면서 보게 되는 메세따지형



까미노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경쟁'이다. 특히 속도경쟁. 누가 얼마를 걸었다고 하면 나도 그만큼 걷겠다고 무리를 해서 걷는 거다. 그러다보니 잠깐 앉아서 쉴 때도 몇 명이 지나쳐 가는 지 신경을 곤두세울 때도 있다. 서양 순례자들은 키가 커서 성큼성큼 걷기에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추월당하지 않으려고 용을 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쳐 앞서 간 순례자 때문에 숙소를 못 잡은 적도 없고, 또 그런들 어떤가? 다른 숙소를 찾으면 되는 것인데. 그러면 바Bar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 된다. 잠시 멈춰서 보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이 지금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기때문이다. 한 번 안면을 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건'인지, 돌이켜 생각하면 더없이 그리운 순간들이다. 올라! 부엔 까미노!
20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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