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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쇠스랑으로 땅을 파다보면 내가 흙이 되고, 흙이 내가 된다.

‘이 흙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를 물어보면,
‘나는 언제부터 있었지?’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여기 이곳에서 숫한 해를 보냈을 이 흙들이 나보다는 훨씬, 아주 많이 선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선배님들을 선배대접하지는 못할망정
풀이 많네, 돌이 많네 하며 투덜거리기만 했으니.
나는 그러고 보면 참 버릇없는 후배다.

어쩌면 난 이 흙들보다도 더 거친 흙일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이 거친 흙을 갈면서 얼마나 손목이 아프실까?
아니 어쩌면 돌들이 섞여 있고, 풀들이 빽빽이 자라도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시며,
내가 스스로 갈아엎어 가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앞집 할머니 같으면 제초제 뿌려서 씨를 말려 버리셨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생태주의자시니 그런 모진 짓은 못하시고,
답답하지만 참아 기다리실 거다.

흙은 참 마음이 넓다.
나도 받아 주었으니...
아니다.
나도 흙이다.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일 뿐.

내가 흙이고, 흙이 나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3:23

200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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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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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8. 유년부 공과 진도에 맞추어
본문 : 사도행전 11:19-26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 22 이 소식을 듣고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해서,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왔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목표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삶을 다짐한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1장 19절에서 26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자기 이름 말고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별명이라고 해요.
우리 친구들 별명 가지고 있죠?
어떤 별명은 들으면 참 좋은 것도 있어요. 전도사님 같으면, ‘배용준!’이라고 부르면 듣기 나쁘진 않아요(좀 웃으라고ㅋㅋ).
하지만 이름을 가지고 조금 바꿔서 ‘○태’라고 부르면 듣기도 싫고, 기분도 나쁘죠.
우리 친구들은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어린이들의 대답을 들으면 진행)

정리해 본다면 어떤 별명을 가지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왕에 가지려면 아주 좋은 별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뜻에서 오늘 성경말씀 속의 사람들도 가졌었던, 그리고 여러분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미처 모르고 있는 아주 좋은 별명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이 내려온 이후 12제자는 물론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을 했어요.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고, 먹는 것도 나누어 먹고, 내 것 네 것 없이 나누어 쓰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고, 당연히 소문이 나게 되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계실 때부터 싫어했던 사람들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게 되었어요. 괴롭혀서 없애버리려 한 거죠.
핍박하는 일이 더 심해지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이 곳 저 곳으로 도망가다시피 했고, 피신한 그 곳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어요.
사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핍박하여 괴롭게 하면 ‘줄어들고 언젠가는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퍼져나갔고, 더 늘어 간 거예요.
이 퍼져 나간 사람들 중에 안디옥이라는 곳으로 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보다도 더 열심히 예수님을 믿었어요.
자기들 집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눈 띄게 예수님을 믿으며 살았어요.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지?’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들 모이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니까,
사람들은 결국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어버렸어요.
‘야, 저기 그리스도인 온다.’
뭐 이런 식으로요.

사실 처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좋은 뜻에서 그랬다기 보다는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하는 식이었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된 거예요.
영어로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죠.

이제 알았죠? 우리의 별명이 무엇인지.
우리의 별명은 그리스도인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뭔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여지는 이름, 그리스도인.
우리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지게 살아가는 유년부 친구들이 되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 나도 저런 그리스도인이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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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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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유년부 설교문)
본  문  마태복음 19:13-15
13 그 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거기에서 떠나셨다.
목표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하늘 나라가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안다.

설교문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9장 13절에서 15절의 말씀이에요(봉독함).

1.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
아이들은 안 되요. 들어 올 수 없어요!
어린이 입장 불가에요.
이런 것 본적 있어요?(13세 이하 금지 표시)

그런데 이런 일이 성경에서도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말예요.

2.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 당연한 모습이죠.
예수님의 말씀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 한 쪽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목소리와 어떤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소란하게 드리는 거예요.

어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 왔는데
제자들이 ‘아이들은 가!’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정신이 있기나 해요?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신데 얘들까지 데이고 와서 정신없게 해요? 당장 데리고 가세요!’
‘그저 예수님께서 이 아이에게 손만 얹어 주셨으면 해서 온 것인데 왜 못 뵙게 해요?’
이런 소리들이 오가게 된 거죠.
당연히 예수님도 금방 무슨 일인지 알게 되셨어요.

3
예수님은 가만히 있지 않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그들 쪽으로 가셨어요.
제자들을 비키게 하시고는 어린이들을 보시고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어린이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어 안수해 주셨어요.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얘들은 가라, 얘들은 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어른들처럼 그렇지 않으셨어요.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다.”

4.
여러분 예수님께 오는 것, 교회에 오는 것 주저하지 마세요.
언제든 좋아요.
마음이 괴로울 때, 기쁠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언제든 오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막지 않으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여러분이 오는 그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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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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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물론 농사를 지으며 땀을 흘리겠다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리고 생태적 삶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들라면
구들방에 불을 떼며 사는 것,
똥오줌 분리형 화장실을 만드는 것,
음식물 퇴비장을 잘 만들어 보는 것 등이었다.

그 중에 오늘 음식물 찌꺼기 퇴비장을 거의 완성했다.
안산주말농장에서 본 것처럼 널판을 사방으로 붙여 뚜껑을 덮는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나무가 없을까를 찾아보았지만 집주변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를 사서 만든다는 것도 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퇴비장 만드는 일이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대문 앞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곳은 포화상태에 이제는 악취까지 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대나무로라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대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크기에 맞게 절단해서 세워 땅에 박은 네 기둥에 묶는 작업을 해야 했다.
생각으로야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지만 막상 철사로 하나하나 묶어 가는 작업은 시간도 더디고,
팬지를 쥔 손이 얼얼해서 작업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일을 하려고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완성으로 두는 것이 어쩐지 거림직하고,
뭔가 끝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감자밭에 신문을 씌운 후 다시 시작했다.
대나무가 부족해서 숲에 들어가 더 베 오고 토막을 냈다.
철사도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녹슨 것이라도 쓰기로 하니 널린 것이 철사였다.
양 끝을 묶는 작업이니 시간은 좀 걸렸지만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내 어깨를 넘어 갈 때는 보람도 더불어 올라갔다.
더구나 퍼낼 수 있도록 한 쪽을 열어 두니 작업도 빨랐고 대나무도 적게 들어가 일석이조가 되었다.

지나가는 마을 분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곱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기하다는 눈빛이다.
‘뭘 지어요?’ 하는 뒷집 창식이형.
‘개집 짖나?’ 하시는 기씨 아저씨.
충분히 그 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모습이니.
만들고 보니 길에서 너무도 잘 보이는 곳에 대나무 빛 짙은 초록색을 드러냈다.

생태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가는 과정.
어쩌면 그것은 자연이 살아 숲 쉬는 이곳에서 더 생경한 풍경이다.
음식물 찌꺼기를 따로 모아 거름을 만들겠다고 조그만 퇴비장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보너스로 굵은 대나무를 가져다가 드릴로 구멍을 뚫고 얇은 가지를 비스듬히 다섯 개 정도 박아 넣어 옷걸이를 만들었다.
작업복을 걸기 위한 것으로 문 밖에 두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업하던 먼지 붙은 옷을 집 안에 쌓아두는 것이 꺼림직 했다.
아무튼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완성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애물단지 같은 대나무를 이렇게 저렇게 활용할 수 있어 좋다.

200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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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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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저렸다.
그러니까 짧게 끝내야 하는 것을...

이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주저앉아 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나 하나 존재 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실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 혹은 한 그릇정도의 양을 내어놓고, 몇 바가지의 물을 섞어 흘려보내야 하다니.
그것도 아무런 책임감이나 가책도 없이.
어떻게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슨 환경운동가로서 변신을 꾀할 수 있는 주변머리가 있지도 못하고.
대안이라면 떠나는 수밖에.
똥의 순환이 있는 곳으로.

비록 다리가 저려 일어나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나에게서 배설된 이 똥이 그냥 버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양 그대로 밭으로, 누군가의 밑거름이 되고, 또다시 풍성한 양식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더 이상 내가 나 하나로만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음에 기쁨의 이유가 있다.
나는 이제 이 대자연의 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다리 저려하며 있을 때 그것은 바로 그 대순환의 한 점에 서 있는 것이니.

2005. 4.8.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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