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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차,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 가늘 길 32.4km(1) 

길을 잘못 들어 차도 위를 한참을 내려가면서 맞는 길인가 초조해 했는데, 지도에 나와있는 지명 리냐레스를 보자 얼마나 반갑던지, 카메라를 자동으로 꺼내서 한 컷 담았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노란 화살표이다.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있는 지방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닐지.



어떤 순례자가 갈리시아는 영국보다도 비가 잦다는 얘기를 했는데, 비도 그렇고 오전엔 안개가 많이 끼는 것 같았다. 산 로께 고개Alto San Roque(1,270m)에 있는 순례자 기념물이다.


현지인들이 손수 만든 지팡이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뽀요 고개(1,335m), 산띠아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지점을 지났다.



초장으로 출근하는 소떼. 멀리 보이는 구획지어저 있는 풀밭들이 소들을 위한 초장이다. 풀을 적당한 크기로 키워 옮겨가며 먹이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소들이 풀을 뜯기위해 초지로 향한다. 사람들에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개들이 소들에겐 얼마나 사납게 짖으며 몰아가던지 재미있게 지켜봤다. 소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 지 걱정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풀을 최선을 다해 뜯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업이다. 먹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순례길 많은 에너지 소모 때문인지) 저녁을 그렇게 많이 먹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뭔가를 위장에 넣어줘야 한다. 어제 먹은 것이 소화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긴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안 먹을 수 없다. 오늘은 오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지만,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있었다. 바로 유목민적 삶이다. 대개의 삶이 어제의 수고로 이룬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착민의 그것이라면 유목민은 거의 오늘에 집중해 산다고 볼 수 있다. 대대로 살아갈 집을 튼튼한 재료로 짓고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축적하기위해 내 땅 네 땅을 구분하고는 스스로 능력치 안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정착민이라면 하늘이 허락한 것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유목민일 수 있겠다. 정착민이 지키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면, 유목민은 이동하고 변화에 익숙한 진보적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겠다. 
단편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본 것이지만, 까미노를 비추어 생각해 보면 까미노는 순례자들을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으로 초대한다. 어제의 어떤 것, 몇 살인지 직업이 뭐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가 아닌 오늘의 한 걸음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오늘 길을 찾고 먹을 것을 구하고 숙소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유목민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오늘 걷게 되는 길에 자신을 맞추고 또 새로운 숙소의 새로운 조건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상이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 같은 일을 하게 되지만 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날은 새로운 날이 되지 않을까. 어제 했기에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삶, 사역도,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다. 까미노의 유목민처럼...

201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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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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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자히르는 ‘한번 만지거나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가는 무엇’으로 주인공이 아내가 행방불명되면서 괴로워하며 자신이 아내 에스테르라는 존재에 얽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에스테르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다.

주인공은 아내를 찾기 위해 먼 곳, 카자흐스탄의 스텝 가운데로 간다. 아주 먼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리는 정말 먼 곳으로의 여행은 자신의 내부로의 여행이다. 전혀 인식하고 살지 않았던 표지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쪽으로 자신의 몸을 돌리는 것, 마치 풍향계가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맞기고 도는 것과 같이.

주인공은 이전까지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의 삶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오늘 자신에게 주어지는 표지들을 좇아가게 되고, 그 여정이 그가 갔던 어떤 여행보다도 길고 먼 여행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찾았을 대 진정한 사랑 또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아내를 찾는 여정 가운데 미하일을 만나고 자신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만날 때 그들이 에스테르에게 받았다는 이름 모를 군인의 피 묻은 셔츠조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죽어가는 한 군인이 자신의 피 묻은 셔츠를 벗어주며 에스테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 옷을 찢어서 죽음을 믿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눠가지세요. 그들에게 내가 방금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유일한 진실을 찾으라고, 그 진실의 원칙에 따라 조화롭게 살라고 말해주세요.’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이나,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하는 ‘오늘’은 어제를 전재로 한 오늘이다. 어제의 어떤 삶이 축적된, 다시 말해 어제의 삶을 충분히 고려한 오늘이라는 뜻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과거에 매어있는 오늘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어떠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피 묻은 셔츠조작을 받을 수 없다. 오늘이 주는 그 무궁무진한 삶의 생명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자히르」의 메시지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지금 그녀가 내 곁에 아내로 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아내를 사랑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을 털어버리고 온전히 새로울 수밖에 없는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다. 마치 유목민처럼. 유목민은 과거에 자신이 머물렀던 곳에 연연하지 않는다. 땅도, 집도, 관계도, 업적(명예)도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 치르게 되는 의식에서 자신의 새로운 이름으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유목민의 삶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200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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