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나누다.
레8장
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3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제사장 위임식 : 속죄제(수송아지), 번제(숫양), 위임식(숫양)

성막의 제단은 그 제단을 사용할 자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을 위해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실로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이것을 지켜보는 백성들 또한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임식의 당사자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은 백성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출 18), 제사장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해 세워집니다.
전자는 이드로의 충고에 의해, 후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워진 것이 다릅니다.
드디어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만남을 안내 할 사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방법보다도 안전한 방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아론이 출애굽 초반부터 협력자의 자리에 있긴 했지만 뚜렷하게 정해진 역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사장이라는 분명한 직임을 갖게 됩니다.
이로써 모세는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고,
아론과 더불어 그의 아들들에게도 함께 위임하면서 그 책임의 지속성도 보장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의 위임식은 하나님과 백성을 향한 책임을 나누는 예식이었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우려하는 마음도 들었겠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들을 감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사람을 하나 둘 세우며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민족을 세워갑니다.

목사로 안수 받는 임직식과 비교 할 수는 없으나 그 의미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배 목사들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오던 일들을 함께 짊어지자고 하는 일이 임직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수적 포화상태라는 것을 비판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게 된 것에 대한 축하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단체, 조직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환영하며 기뻐할 것은 함께 짐을 나누고 책임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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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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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는 지도자

출34

29 모세가 두 증거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34 그러나 모세는, 주님 앞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말할 때에는 수건을 벗고, 나올 때까지는 쓰지 않았다. 나와서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때에는,

35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다시 자기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모세는 또다시 산 위에서 하나님과 40일을 보내고 다시 만든 돌 판을 들고 내려옵니다.

그런데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납니다.

너무도 간절한 모세의 태도 덕분에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다가오셔서 이야기 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광채 나는 얼굴 그대로 백성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광채가 나는 것을 알고, 또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알자

그 때 부터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날 때는 수건을 벗었다.


언 듯 생각해 보면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도 아닌데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면

좋은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집트의 파라오였다면 자신이 신의 아들, 혹은 신이라고 떠들며

백성들을 자신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는 좋은 도구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있어서 얼굴의 광채는 그것이 비록 하나님을 만남으로 얻게 된 것이라 해도

백성들이 두려워 한다면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리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백성들을 더 강하게 장악해서 지배하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모세의 위대성을 엿볼 수 있고,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의 시간을 통해 광채와 같은 능력을 얻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뒤로 감출 수 있는 사람,
광채 뒤에 그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해야 할 작은 일들에 성실히 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빛나는 광채, 또 어떤 능력도 하나님의 것이며
잠시 스쳐가는 지나가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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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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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한다고 큰 소리 처놓고서는 뒷심 부족에 발목이 잡혀 버렸다.
더구나 목사 안수 받은 후유증(?)까지 겹쳐서 하루 한 두번 블로그에 얼굴 도장만 찍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야심차게 시작한 하나님이 이끄는 40년은 출애굽기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으이그...

빈손의 지도자

출34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서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 사실이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백성이 고집이 센 백성인 것은 사실이나, 주님께서 우리의 악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산에 올라 하나님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반복해서 함께 가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렇듯 모세의 영향력(카리스마)은 하나님과 밀고 당기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백성들에게 전하거나,

하나님을 향해 백성들을 대변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발할 수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모세가 얻은 것은 없습니다.

오직 혜택은 백성에게,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물론 백성이 얻은 혜택은 최소한의 희생을 감수한 후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역할이 있었기에 수준 이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힘겨운 훈련의 여정을 통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만나게 되는 지도자들은 대개 반대로 합니다.

백성들에게는 아부하고, 하나님의 이름에는 먹칠을 합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가벼운 존재들에 의해 벌어지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려져 있습니다.

빈손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대조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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