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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만약 서울에 살고 있었으면 '가뭄에 비가 와서 좋네'하면서도 솔직히 좀 귀찮아 할 것이 분명하다.
가뭄이라는 것에 대해 거리감을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난 정말 기분이 좋다.
오전에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후 내리는 비, 더구나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여서 너무 좋다.
어제 감자를 심었는데(좀 늦음), 딱 맞게 비가 내려 주니 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지난해에 마을 어르신께서 지나가시면서 비와 관련해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농촌에는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비 온 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때에 맞춰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감자도 심고, 포도밭에 거름도 했는데 그 말씀 따라 계획적으로 한 것처럼 되었다.
농촌에서의 생활이 만 일 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는 꼭 옆 집 할아버지나 귀농 선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도 보고, 인터넷을 하건만 잠시 날씨 확인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지난해와 별반 다름없이 나는 초보농부일수밖에 없다.
매일 수차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뒷집 형도 '오늘은 이 친구 뭘 하나, 제대로 하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다.
사오 년? 아니면 그 이상 초보농부일 것 같다.

봄 가뭄을 해갈하는 비이기를 바라면서
마음속까지 시원함을 느끼며
행복해 하는 초보농부의 두서없는 넋두리다.

2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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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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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오후에 교회 마당에 세워진 차에 몇 가지 짐을 넣어 두려고 문을 여는데
초등부 꼬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더니
‘전도사님! 차가 왜 이거예요?’하는 거다.
순간적으로 ‘이 차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웃으면서 별 이야기는 하지 않고 차 문을 닫고,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 보일만 한 것 같다.
아이의 입장에서 전도사님이 승용차도 아니고,
최소한 스타렉스 정도도 아니고, 트럭(화물차)을 몰고 다닌다는 것이.
만약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처음에 교회에 차를 몰고 가서는 걸어서 5분 거리 정도 되는 멀찍한 곳에 차를 세웠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좀 먼 것 같아서 2분 정도 거리에 세웠고,
또 좀 지나서는 교회 건물 건너편에 있는 교회주차장에 조심스럽게 세웠다.
그리고 여름성경캠프 때 짐을 나르게 되면서 아예 교회 마당에 주차하게 되었다.
볼 사람은 다 봤으니 자신 있게 대기 시작한 거다.
주일 아침에 교회 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데
관리집사님께서 주일에 교회 마당에 트럭은 주차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짓을 하시다가
‘어! 전도사님이네’하며 웃으실 때도 있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별 일이 없는 한 거리낌(?)없이 교회 마당에 주차를 한다.

전도사가 트럭을 몰고 다닌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별 일 아니지만,
기존 교회의 상식으로는 아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다.
우리 부서 선생님들도 그러했겠거니와 말은 안 해도 다른 성도들도 그랬을 것이다.
몰고 다니는 입장에서야 농촌 생활에서 더없이 유용한 차가 화물차이고,
운전하기도 어떤 차보다도 편하니 아주 좋은 교통수단인 셈이지만 말이다.

‘전도사님 차가 왜 이거예요?’라고 묻는 꼬마에게 대답할 말이 생각났다.
‘멋있잖아!’

2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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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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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의 아이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딸이며 아들인 것을!
그대를 거쳐왔으되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며,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그대의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 자신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이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는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 그대가 결코 찾아 갈 수도,
꿈속에서조차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 아이와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왜냐하면,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 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활,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궤도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 분의 온 힘으로 그대를 구부리는 것이다.
그 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 사수이신 신의 손길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 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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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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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39
몇 년 전 교회에서 남선교회 모임에 가서 말씀을 전할 일이 있었다.
중년남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할 수 있을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식당으로 갔다.
순서가 되어 '어린이들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무관심하게 앞쪽만 쳐다보고 있던 집사님들이 갑자기 고개를 내 쪽을 돌리고는 ‘정말 그래요?’ 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아마도 내가 맡았던 부서에 속한 자녀를 가진 이들이 반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잘 관찰하면 그 부모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최소한 부모들이 그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지는 알 수 있다.
왜냐면 자녀들은 그 부모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 성찰을 통해 극복하기 전까지는 대개가 부모를 답습하게 마련이다.

부모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그대로 아이들이 사용한다.
그리고 일관성 없는 삶의 내용이 그대로 아이에게 옮겨져 종잡을 수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
아이들이 참을성이 없고, 불안해하고, 조급하고, 화를 잘 낸다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가 문제라고 하면 맞다.
반대로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도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아이만의 도피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것들을 유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물질적인 어떤 것만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유산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유산을 전하지 않고 긍정적인 유산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첫 번째는 부부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러 연출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아이들이 볼 때도 당당하게 포옹하고, 키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자주 해 주는 것도 좋다.
반대로 싸우는 모습은 '절대'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특히 한국의 부모들에게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사랑을 보고 자라지 못한 아이는 타인은 물로 자기 자신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래서 늘 부정적이 되고, 불평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학적인 모습도 보이게 된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학원에 많이 보내고
무언가를 풍요롭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해 준, 해 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부모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자신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바른 원칙에서 오는 규칙적인 좋은 습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독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책을 가까이 하는 아이가 될 것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공부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 부모님께 공손히 안부를 묻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깊이 새겨질 것이다.
종종 새벽기도를 평생 하신 분의 자녀들이 잘 되었다는 설교 예화를 듣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은혜를 주셨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새벽기도를 나가는 부모의 한결같은 습관을 보고 그 자녀들이 그것을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삶의 태도로부터 오게 된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지 않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면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부모 됨의 우선적인 요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필코 ‘극기’라고 말하고 싶다.
자녀를 위한, 아니 자신을 위한 좋은 습관은 극기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남길 유산은 사랑과 습관이다.

200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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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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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의 신혼집에 갈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혼인 가정에 방문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둘 만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친구의 부인이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거다.
벌써 몇 차례 친구들을 초대했었는데 아주 즐겁게 여겼단다.
더욱이 음식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니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결혼 참 잘했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 주었다.

흔히 남자들은 자신들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대로 장애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여자의 울타리 안에서일 뿐이다.
사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없지만 남자는 여자가 그려주지 않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아주 작게는 친구 하나 집에 데리고 오는 일부터,
보다 크게는 자신이 가진 꿈을 이루어 가는 일이 그렇다.

여자는 칭찬과 격려로 남자를 나아가게 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반대와 무시로 남자를 주저 앉혀버린다.
남자가 아내가 지지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차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비율이 높아간다.
실제로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심약해지나
여성들은 그 반대로 오히려 더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므로 여자들, 아내들은 남편을 볼 때 비록 좀 부족해 보이고
때로 유치해 보여도 그것을 직설적으로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에게 부족한 점이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넓게 품음으로 격려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남자들은 아내에게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아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해야 한다.
아마 대부분 그것이 생각보다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부족한 자신과 함께 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06.1.2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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