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은 사랑이다.
레19장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한 몸에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란 분리됨의 결과물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 다른 모양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자신들의 본래적 정체성을 망각했기에 하나님께서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강조하시는 거룩, 특히 레위기를 통해 보여주시는 거룩의 모델은
바로 이와 같은 분리되고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려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부모이든, 가난한 이웃이든, 일꾼이든, 종이든
거꾸로 재판관이든, 부자들이든 간에
서로를 향해 형제라고 말할 수 있게 됨으로
그래서 한 부모 아래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존재임을 각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로서 산다는 것은 단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듯이 바른 원칙을 갖고 그 쪽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전재됩니다.
왜냐면 천지창조에서 보여주셨듯이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단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짐승에서 식물에까지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하는, 하나님의 백성 됨을 깨닫는 사람은
사람과 일, 사물을 보면서 사람의 기준과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미 그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지만 하나님을 보고, 짐승을 보면서도 역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야곱이 형 에서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하듯 한다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 아닐까요.

만물에 깃든 하나님, 그 생명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그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로부터 하나님의 마음과 만남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관계를 나누고 차별하다 못해 멸시하고, 적대하다 못해 학대하며, 책임전가하는 것이 아닌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됨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은 결국 당신을 모함하고, 때리고,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품으신 예수님의 모습에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을 거룩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로 볼 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으로 느끼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겐 너와 내가 따로 없고, 그 누구도 하나님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삶,
마음 열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삶.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추가>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만난 때, 내 안에 하나님과 상대방 안의 하나님이 만나는 것.
그러므로 결국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희로애락이 나의 것이 된다.
같이 느끼는 세상,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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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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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주인
레17장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영종도에 있는 큰집에 놀러갈 일이 있었습니다.
큰어머니께서 갯벌에 조개를 잡으러 가셔서 저녁에 마중을 가려고 우물가를 지나가는데
동네 어른들이 개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간을 잘라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의 잔인함이라...'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인지 저는 익힌 것이라도 간을 먹지 않습니다.

뭐 지금 시대에 피를 먹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논의는 별 의미는 없어보입니다.
혹자는 짐승이 죽을 때 피에 사람에게 해로운 성분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그런 뜻에서야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시는 지 그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 되겠죠.

하나님께서 노아의 시대로부터 육식을 허락하셨지만, 그 때도 피를 먹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그 피는 곧 생명을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짐승을 취할 때 부득불 그것의 생명을 빼앗을 수밖에 없지만,
그 생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피를 구별함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피를 구별해서 드리는 행위나,
짐승을 잡을 때 피를 땅에 쏟고 흙으로 덮은 후 고기를 먹도록 하신 것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이 아닌지.
피로 상징되는 생명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또 자신의 생명, 이웃의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것임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하신 생명 이상 무엇을 더 하나님께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허락하신 것들을 마음껏 누리되
그것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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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황간 장에서 병아리 일곱 마리와 오리 두 마리를 구입했다.
일단은 컨테이너로 덮어 놓고 물과 모이를 넣어주었다.

닭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닭장도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고 있으니 당장 급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둘러 꼬박 이틀을 닭장 짓는데 투자하게 되었다.

오자마자 오리 한 마리가 죽고,
닭도 한 마리가 비틀비틀하더니 이틀만에 죽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 합해 여덟마리가 남았다.

사실은 어미 닭이 품어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를 기르고 싶었다.
부화기에서 깬 병아리는 후에 알을 낳아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알을 먹거나, 닭을 잡아서 고기를 먹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 병아리들로는 다음 세대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은 있는 것이지만 생명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인간들이 인간들만을 위해서 손을 대면 그 안에 생명이 소멸되어 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이 없지만
그것들은 한 번으로 끝나버린다.

짐승뿐만 아니다.
우리가 먹는 곡식, 채소 들 역시 채종(seed gathering)은 거의 되지 않는다.
해마다 종자를 구입해서 심어야 한다.

인간의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자란 작물은 다음 세대로 자신의 생명을 전하지 못하는 운명이다.

우리가 먹는 것들이 거의 이런 상황이다.
생명력이 활발한 것을 먹어도 부족한 현대인들이
마치 자신들과 같이 생명력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먹거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작고 볼품 없더라도, 혹 맛이 좀 덜하더라도 생명력을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200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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