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715)


배운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것이니 배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가져왔던 생활습관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 배움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번번이 실패를 맛봐왔지 않나.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힘겨워하고 있으니

지금 난 더없이 훌륭한 배움의 길에 있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한 걸음이 힘겨울수록, 혹독할수록 더 큰 배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음에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길을 간다.

힘들고 아프고 앞길을 예측할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수업을 받는 것이다.


간드룩을 벗어나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계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간드룩의 좁은 골목들을 지났고,

약간의 오르막과 긴 내리막이 이어져 있어 큰 어려움 없이 걸었다.

바로 담 넘어에서 웃으며 나마스떼 인사를 전하는 아이들이 있어 힘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접어 들었고, 산모퉁이로 돌아서 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땐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쿰롱단다로 향하는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작은 체구의 젊은(어린) 동양인 여성들이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깊은 숨을 뱉어내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도 언어문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것이 보통인데, 힘이 들어서 더 갈 수 없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네팔 현지인들이었고, 세 명이 자매지간이라고 했다.

처음엔 잘 못 알아들어서 내려가는 중인 줄 알고 좋겠다고 했는데,

짐을 들고 앞서 걷는 것을 보고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 왔냐, 어디까지 가냐 등등 기본적인 정보를 대충 공유하긴 했는데, 정말 대충했다.

일회성의 만남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 후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재회했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아주 중요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여정 또한 배움의 시간이었고,

마치 뒷산에 온 것처럼 걷는 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내 모습에서

여러가지 생각하게 했으니 또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고 내리며 적적한 길에 길벗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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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18. ABC트레킹 첫째날~둘째날

간드룩(1,940m)


몸살 기운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만 하다고 여겼다.

해가 지는 시간에 접어들면서 한기를 느꼈지만 그것도 기온이 낮은 탓인줄로만 알았다.

얼마나 힘겹게 올랐든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부족하나마 온수도 나오고 

손에 잡힐듯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의 그 빼어난 풍광을 보고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에서 3대 뷰포인트 중 하나인 간드룩에 있는 것이니 더더욱.

뒤늦게 도착한 네팔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폼잡는 모습도 알게모르게 크게 위안을 주었다.


저녁은 7시정도에 가능했다.

주방에서 한참이나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단체 손님들은 객실에서 먹는 지, 아니면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먹는 지 알 수 없었다.

점심은 볶음밥 종류를 먹었으니, 첫 롯지에서의 식사는 네팔 전통 음식을 먹고싶었다.

한국사람이 먹기에도 무난하다는 그 달밧을 주문했다.

 


아마 간드룩에서 본 달밧이 가장 정갈하게 담겨서 나온 것 같다.

이후에 다시 먹지는 않았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보니 이렇게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튼 처음 대면한 달밧!

닭고기가 들어있는 카레는 얼마나 자극적인지

한술 뜨고 혀를 찼던 마늘녹두죽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블로그들에서 먹을만 하다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입맛을 가진 것인지 궁급했다.

이후에도 한국사람들 중에 달밧을 주문해서 먹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독특한 카레 맛 때문에 다른 음식들까지도 먹지 못하는 경우는 봤다.

아무튼 몸상태처럼 입안 상태도 좋지 않아서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한 번으로 족한 달밧과의 첫 만남을 갖고 간드룩에서 트레킹 첫날 밤을 보냈다.


한국의 겨울처럼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난방이 되지 않으니 더 춥게 느껴졌다.

좁은 침낭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자니, 상쾌한 아침을 맞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비추는 따듯한 햇빛 덕분에 찌뿌둥한 몸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몸도 덥혀주고,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을 순식간에 말려주었으니.

그리고 어제 저녁과는 또다른 자태로 맞아주는 히말라야가 있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 저기로 가고 있구나 싶어 그져 신기함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아침으로 먹은 구릉빵. 안나푸르나 지역에 거주하는 구릉족의 전통 빵이라고 한다.

 

롯지의 꼬마인데, 사진보다 훨씬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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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1,220m)-킴채(1,640m)-간드룩(1,94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에 깔린 돌계단들,

아마도 이 계단들에게 입이 있다면 할 말이 참 많을 거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기에 밟을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하느냐고 말이다.

쉼없이 지나가는 트레커들이 쏟아내는 불평에 억울함을 토로할 것이 분명하다.


계단이 왜 만들어졌을까? 결국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탈진 길에 돌로 가지런히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림에 편리를 도모한 것인데
너무 가파르다고, 너무 많다고 투덜대는 말들을 들어야 하니 기막힌 일이다.
그러니까 트레커들은 불평할 자격도 없거니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한 두 번 다녀가면서 주제도 모르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계단 문제는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힘들고 아픈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만큼 무리가 될 정도로 걸은 내 책임이고, 그만큼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가지 않은 내 책임이고, 몸 관리를 잘 못해서 상태가 안 좋은 내 책임이다.
간드룩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는 무릎이 아파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어 주저 앉아야 했으니 할 말이 없다.
까미노에서도 첫 날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듯이 히말라야에서도 그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더 걷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심신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겨우 간드룩의 입구에 다다라 너무 기뻐하며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했는데,
기쁨도 잠시,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에 또다시 얼마간 더 투덜거리고 말았다. 
더구나 반팔반바지 차림의 서양인 남성 둘이 계단을 뛰어오르며 지나쳐 가는데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포터들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고, 당나귀나 말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아무튼 그렇게 가이드북에 있는 소요시간에 틀림없이 4:30경에 롯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록 죽을동 살동 올랐지만, 간드룩에서 눈에 들어오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들은 모든 시름을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멀리 있지만, 저 곳을 향해 출발했고, 한 고비를 넘겼다는 뿌듯함에 벅찬 저녁이었다.

 

 

 

 

 

 

 

ABC트레킹의 첫 숙소인 간드룩 Peaceful Lodge.

 

간드룩의 저녁,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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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1,220m)-킴채(1,640m)-간드룩(1,940m)



사울리바자르에서 킴채, 다시 킴채에서 간드룩 구간을 가이드북은 '급격한 오르막'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급격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직접 보고, 걸어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글로 읽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 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울리바자르에서 식사하며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갖고

이제까지 걸어온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초반 약간의 오르막과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못했다.

작은 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갔을 때, 드디어 그 놈을 보고야 말았다.

이게! 이게! 계단인가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뒤로 넘어지지 않고 잘 오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멈출 수 없어 한 발 한 발 내 디디며 스틱에 의지해 올랐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짐도 짓눌렀지만, 감기로 인해 좋지 않은 몸상태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솔직히 무척 당황했고, 상심이 되기도 했다. 

첫날부터 마음 상태가 바닥인데, 무슨 트레킹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왔다.

첫 계단의 중간 정도 올랐을 때, 위에서 젊은 서양인 여성들이 달리듯이 내려왔다.

'하이~'하고 인사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지나쳐 가버린다.

빨리 내려갈 수 있는 것도 부러웠지만,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한참이나 뒤돌아보게 했다.

나도 저들처럼 내려 갈 수 있을까, 그 날이 오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니.

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는 지.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집들이 나타나고 가로지르는 도로도 나타났다.

잠시 눈이 마주친 현지인 아주머니는 전혀 표정이 없다.

밝게 인사만 해주었어도 힘이 났을테지만, 그 분에게 그럴 의무는 없는 것이니 탓할 순 없었다.

지도를 보니 도로를 따라가면 지그재그로 돌고돌아 수월하게 올라 갈 수 있을 같았다.

그러나 트레커의 길은 그 길이 아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계단이었다.

살짝 갈등을 하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트레커이지 자동차가 아니니까. 자존심이 있지.ㅠ


그렇게 사울리 바자르를 출발해 킴채를 지나 간드룩까지 장장 3시간 반 동안 걸었다.

사울리 바자르에서 보면 700미터, 나야풀에서 보면 900미터 가까운 높이를 올랐으니

단순히 걸은 것이 아니라 올랐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트레킹 첫 날 노포터 노가이드에 가파른 길을 오르며 도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지만,

내 발로 왔다는 것, 누구도 갔다 오라고 등떠밀지 않았다는 것만 명확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러운 여정이라 하더라도 불평은 내가 선택할 감정이 아니었다.

 

 

이 정도 계단은 (좀 과장하면) 거의 평지라 할 수 있다. 

 

 

힘든 가운데도 멀리 보이는 설산은 가슴을 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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