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고 싫고에 의해 행동을 결정할 때는 지난 것 같다.
정황을 봐서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해야 한다.
여러 일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 그렇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배려하고
그 분들이 서실 자리를 미리 마련해 드려야 한다.
혹시 내가 내키지 않는다고, 싫다고 해서 머뭇거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돈이 드는 일이어도 그렇고,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어도 그렇다.
자식된 도리라는 표현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가족이라는 그림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 역시 나의 '기호'에 따라 가변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변덕을 부리는 것 또한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요청이 '제발 마음을 굳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시험의 목적

출15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고통의 문제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을 잘 믿고, 더구나 그 분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어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실로 놀라운 일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아마 체험을 이야기 하라면 3박4일도 모자라 녹취해서 책으로라도 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 흥분되는 시간을 지나고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의 길은 이름만 달리할 뿐 광야의 연속이었고,

광야는 곧 결핍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수르광야를 지나며 3,4일 물의 결핍을 경험할 때 과연 그것을 신앙의 이름으로만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타는 목마름 속에서 그 입으로 한 결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하는 시간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으셨을까?

이건 지금의 독자의 물음이기도 하지만, 그 현장에서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타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시험’이라고 간단히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그 무엇도 주시지 않은 상황에서 뭘 따르라는 말씀인지 다소 생뚱맞긴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의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이 휴가를 떠나신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의 상황 중에서 바른 선택을 해 주기를 바라시는 마음 가득 담아서 말입니다.

다소 가혹한 감이 없진 않지만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당신의 사람들을 단련하시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고, 불리해 지더라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목마름의 시간이 주어질 때, 그래서 하나님의 부재가 더 느껴질 때,

오히려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것,

그래서 삶의 태도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해 이르고자 하시는 목적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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