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가 보면 똑같은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 극명하게 다르게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고민이나 고통 등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것으로 나타난다.

1. 고민이나 고통을 책임과 의무로 여기고 짊어져야 한다
2. 고민이나 고통을 친구로 여기고 삶을 즐겨야 한다.

짊어지느냐, 즐기느냐는 마음에 달린 것 같다.
이제까지 짊어지는 삶이었다면, 이젠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
약간은 진지함의 관성이 있기에...
 

준비를 위한 준비

출13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요셉에 의해 시작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애굽생활이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70명으로 시작한 그들이 한 민족이 되어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이제는 하나님의 명실상부한 선택된 민족으로서 첫발을 내디디는 모습이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는 어렴풋한 하나님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한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빠짐없이 실천한 사람들만이 이 대열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시작으로 일주일간의 무교절을 지킨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매 년 반복해서 이 구원의 사건을 되새길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 절기를 지키며 자신들이 어떤 백성인지,

어떻게 자신들이 시작되었는지를 전하고 또 전할 것입니다.


주목해서 볼 일은 이들이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이 임종하며 형제들에게 명했던 일,

즉 요셉 자신의 해골을 매고 올라가라고 맹세시킨 일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모세를 통해 이 모든 일들이 주도되고 있지만,

결국 요셉으로 시작되어 요셉으로 마무리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치르며 보여주었던 출애굽의 밑그림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의 행진도 아니고, 급하게 출발한 그 길이 얼마나 막막했을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인들, 어린이들, 노인들이 뒤 섞이고, 짐승들과 짐수레들의 행렬이

오히려 그들을 낙담하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더구나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냥 앞 사람만 따라 가야 했다면 말입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있었으니,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에서 지켜주는 것 이상으로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처 없이 버려진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을 크게 잡아 주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준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났고, 또 그 과정에서 주변 세계에 그들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져서

환경적 준비는 다 되었을지 몰라도, 정작 준비되어야 할 정신의 훈련이

광야의 시간들을 통해 시험받고, 더 단단해 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기대감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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