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내 몸을 따듯하게 해 주었던 옷들을 세탁을 하고, 접어서 장롱 서랍에 넣었다.
좀 섭섭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계속 밖에 걸어 둘 수는 없다.
때가 되면 들어가고 좀 더 얇은 옷가지들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고 따듯해진 날에도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다닌다면
사람들의 비웃음보다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할 거다.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바꾸어 입어야 하는 데
여전히 과거의 것들을 고집하면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익숙하다고, 편하다고 뒤로 물러서기만 한다면 더이상 발전은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입고 있던 애굽이라는 옷을 6개월 동안 벗겨주려고 애쓴 것 같다.
그 결정적 순간이 바로 출애굽기 12장의 사건이 아닐까.
오늘 묵은 옷들을 꺼내 세탁을 하고 장롱에 넣으면서
옷의 변화 만큼이나 마음의 변화 또한 소망해 본다.
 

보고, 듣고, 만지다

출12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양고기, 문설주, 무교병, 쓴 나물, 띠, 지팡이...
성경 특히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성경의 말씀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쓰여 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기록되었다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 왜 이런 것을 자세히 쓰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땐 이스라엘의 후손의 마음으로 읽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마지막 재앙을 준비하시는데

하나님과 모세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과 함께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시작점을 찍으려 하시고,

또 그 시작점을 매 해 기념하며 기억하도록 하려고 하십니다.

그 기억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직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지시하십니다.

뭐 굳이 백성들이 이런 일들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일들을 빠짐없이 이르고 계십니다.

그냥 서둘러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로 하여금 쫓아내도록 하셔도 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며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규정에 따라 절차를 밟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율법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시작, 즉 유월절의 시작은 공감각을 이용하도록 하십니다.

보고, 듣고, 만지는 생생한 경험으로 통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몸에 새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어떤 일을 당할 때 그 때의 그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들을 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자신들을 구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양을 고르고, 양과 시간을 보낸 후, 그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나누어 먹고, 더불어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는데,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어야 합니다.

누구라서 이런 장면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초월해 계시는 어떤 분으로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생생하게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그 모든 것을 통해

오늘도 우리들을 만나고 계시고, 그 가운데 기억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기 12장의 하나님은 더없이 강한 분이시지만 섬세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매 년 유월절을 통해 전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체로 바꿈, 이렇게 쓰는 것이 더 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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