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교육 시간
레25장
20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21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22 너희가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소출을 먹을 것이며 아홉째 해에 그 땅의 소출이 들어오기까지 너희는 묵은 것을 먹으리라

이스라엘을 설명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아니 가장 우선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들의 삶의 순환이 안식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나아가 인생의 순환까지도 안식일이 확장된 안식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한 명 한 명의 쉼의 문제에 관심이 있으셨듯이
땅의 쉼에도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땅의 쉼이란 결국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생명활동을 이어가는 식물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뽑아내면서 그려 가시는 이상적 공동체 안에
단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땅의 쉼과 나무와 식물들의 쉼이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저주받은 땅이 하나님의 복 주심에 의해 풍성한 소출을 내지만
그 땅이 한 없이 모든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무한한 창고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생명력을 통해 무상으로 먹거리를 얻었으니
7년에 한 번 쉬도록 하여 재충전의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부들에게 있어서 1년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업이 아닌 목축업을 하는 민족이었기에 처음부터 길을 잘 들이면 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도 막상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20절의 말씀을 미리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 곧 믿음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을 나올 때 자신들의 가능성이나 소망을 보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왔듯이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에서의 삶 역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 가운데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땅의 안식은 6년 동안 일하여 먹고 살지만
단지 그들의 땀 흘림 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교육 시간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땀 흘려 수고 하여 얻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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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맛보기
레23장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안식일/ 유월절(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과 무교절(첫째 달 열닷세날부터 7일 동안)
첫 곡식단을 바치는 명절(곡물을 거둘 때 첫 이삭 한 단을 바침, 안식일 이튿날 흔듬)
칠칠절(곡식단을 요제로 드린 날부터 50일)/ 설날(일곱째 달 첫 날)
속죄일(7월 10일)/ 초막절(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사람이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에덴동산에 각종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유유자적 할 수 있었을 텐데,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서부터 저주받은 땅을 가는 일을 해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많은 일들이 있지만 당시의 일이라면 농사와 집 안팎의 일이 고작이었을 것이지만,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는 인생들이 6일 동안 자신의 삶을 위해 땀 흘리고,
일곱번째 날은 구별하여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시지만, 류가 다른 일인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있었을 법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시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일 동안은 사람을 위해 일하지만,
일곱 번째 날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면서 저주의 삶을 살도록 하셨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며 누렸던 그 삶의 내용을 맛보도록 허락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니 결국 안식일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이를 오해하여 그 제도 자체를 수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막히고 얽힌 것들을 풀어주기 위한 날로 생각하시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에 한 발짝 더 다가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레위기 23장에 정리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절기들 역시 이 안식일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절기들을 '나의 절기',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시지만,
절기 역시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배어있는 사람을 향한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과 절기를 지킬 때 하나님의 숨결 안에서 참 자유를 느끼고 쉬어야 했듯이
오늘 우리들도 소위 안식일이라고 말하는 주일이나 신앙생활을 위해 구별한 시간 가운데 있을 때
환경이나 성과들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 안에서 쉼의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만남의 기억, 에덴을 맛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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