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끄는 40년을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교회에서 '목적이 있는 40일' 캠패인 중 2월 마지막 날에 시작을 했는데
벌써 6월 하순이 다 되었다.
원래 목적지는 신명기까지 하는 것이었는데,
40장 보는데 넉 달이 걸렸으니, 갈 길이 너무 멀다.
레위기라는 산은 또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그래도 레위기까지는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27장이니.
암튼 허접한 내용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하고, 또 마음을 잡아서 레위기도 함 가보자.
천천히, 서둘지 말고.ㅋㅋ

 

마침이 아닌 시작

출 40

16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것을 모두 그대로 하였다.

17 마침내 제 이 년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웠는데,


출애굽 한 지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 봉헌합니다.

모세와 백성들의 머릿속에 시내광야에서 보낸 지난 10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사건 사고의 연속, 그러나 뿌듯함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비록 광야에서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형편이지만 중심에 하나님의 성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없음’으로 인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 기댈 언덕이 저 멀리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닌 자신들 안에 있게 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성막이 세워진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로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드웨어가 만들어졌고, 그것을 채울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멈추어 버리면 안 됩니다.

이 성막을 통해 해 나갈 일들이 어떤 것인지 더 관심 갖고 집중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능한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릇의 완성 앞에서 만족하고 그릇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누군가 이 건물, 제도에 집착하면 정신, 관계, 생명력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도가 어느 정도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가변성, 수용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변화와 발전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지금도 멋들어진 예배당 건물을 지어놓고는 그 건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그 건물 자체를 지키기 위해 급급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 참 나가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제도가 그러했듯, 성막 역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중요한 것이고,

결국 성막과 제도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부터 이어지는 레위기의 말씀들이 의미가 있습니다.

성막과 제사장 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얼마나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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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의 합작품

출 37

1 브살렐은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 높이가 한 자 반인 궤를 만들었다.

2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렀다.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들이 그대로

오홀리압과 브살렐, 그리고 그를 돕는 이들의 손길에 의해 실체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모세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솜씨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시 잘못 이해한 부분 때문에 오류가 나지 않을지 노심초사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를 만들고 성소의 각종 기명들을 만드는 일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세에게 설계도를 주셨을 뿐 그것을 만드는 일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모세가 전하는 것을 하나도 빠트릴 수 없었겠지만,

이 작업의 모든 키는 작업자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좀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꿈의 실현이 사람들의 손끝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능력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집중해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만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이 본문을 읽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손끝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사람들의 손끝에서 현실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삶의 장 속에서 그것을 분별해 내고 구체화 해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모세와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해서 모든 의혹을 말끔히 씻어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오늘의 사회, 오늘의 기독교, 오늘의 교회의 현실은 한마디로 ‘오리무중’이라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말해 자신이 뭘 해야 할 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르침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가지고도 정반대로 이야기들을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죠.

더구나 사회 문제들에 대한 견해들은 왜 그리 극단을 달리는지.

그러다 보니 교회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재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심히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성경 말씀 한 두 줄 읽고 너무 멀리까지 나온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담아 봅니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브살렐과 같이

하나님의 설계도를 자신의 손끝에서 실체로 만들어 내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동업자요, 동역자입니다.

그 동역의 결과는 멋진 합작품의 생산에 있는 것이 되겠죠.

그런데 요사이 그리스도인들, 특히 말 잘하는 사람들이 그 합작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기에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조용히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는 분들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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