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지어보는 포도농사...
나에게 적당한 포도밭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물론 적당하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내 기준에서의 이야기였다.
동네 분들은 최소한 1000평 이상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고,
현실적으로도 1000평 아래의 밭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까지 버티며 밭이 나서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뒷집 형의 소개로 정말 440평정도 되는 아주 작은 밭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아래 있는 2000평 되는 밭에 비하면 포도나무 340그루가 심긴 정말 작은 밭이었다.
더구나 관리가 잘 안된 탓에 곳곳에 죽은 나무들이 있었고,
지지대들도 썩어서 부러져 있는 곳도 많았다.
하긴 한다고 해놓고 포도밭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향유 아빠는 다 그런 밭으로 시작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별 차이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 말에 위안을 삼으며 또 아버지의 열심으로 모든 나무에 껍질을 벗기게 되면서 조금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하지만 움이 트는 것도 늦고, 적당한 간격으로 나오지도 않는 순들을 보면서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친구가 가르쳐 주는 스케줄에 따라 비료를 뿌리고,
약(친환경 재제)도 치면서 여전히 미숙아처럼 보이는 순들을 보며 가슴을 조려야 했다.

포도 농사를 지면 세 번 울고 세 번 웃는다는데 언제 웃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는데도 가지가 얇아서 열매를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송이를 솎아 주고, 알도 솎아 주었다.
기특하게 맺어준 열매들을 빠짐없이 봉투로 싸 주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흘렀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포도들이 글쎄
까맣게 익은 것은 기본이고, 상품이 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수확하기 며칠 전부터는 정말 될까 하는 생각에 포도밭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그런데 이렇게 익어 줄 줄이야.
물론 일반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는 송이도 작고 알도 작아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못해 감사 그 자체였다.

웃을 차례가 된 것일까?
수확하고 손질하는 과정이 고된 시간들이었지만 내가 농사지은 생산물을,
그것도 포도를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제는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밭에 깔아 두었던 비닐을 거뒀다.
변변찮은 주인을 만나 칭찬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고생만 한 포도나무들이 시원한 물을 충분히 머금기를 소원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로 아직도 우리집 식탁에서는 포도가 끊이지 않는다.
세 번 울고, 일곱 번 웃는다고 해야 할까?

200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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