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연기자들이 쇼프로에 나와서 인생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가소롭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들이 살았으면 얼마나 살았다고 함부로 삶을 논할 수 있어?'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생각이 바꿨다.
그들은 이름하여 연기자들이다.
일정기간을 자신과 전혀 다른 어떤 사람을 연기한다.
경찰도 될 수 있고, 강도도 될 수 있고, 사장도 됐다가 길거리의 불량배도 되었다가,
유학생도 되고, 농부도 되고, 택시 기사도 되는 거다.
물론 한시적이고 '연기'이긴 하지만
최소한 그들의 삶을 경험해 봤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사람의 삶', '살아감'에 대한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때때로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는 바로 나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봐야 삼십대 중반의 삶의 연륜으로,
그것도 학생, 학생, 교육전도사 정도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물론 부모님도 보았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쌓아놓은 견해가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담아 낼 수 있을까.
마치 뭔가를 통달한 척 설교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어설프긴 하지만 농부로 약 2년을 채워 오고 있다.
그래서 정말 쪼금은 농부에 대해 알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농부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얘기는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할 수 있다면 나에 대한 이야기들 뿐...

어제는 포도주 병을 군포에 있는 두산공장에서 실어왔다.
1톤 포터트럭에 4단으로 가득 싣고 오는데 솔직히 겁나는 일이었다.
트럭을 몰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렇게 짐을 온전히 실어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온갖 모양의 병들이 쌓여 있는 공장에서 매일 끊임없이 들어오는 화물차들에 병을 올려주는 아저씨들을 만났다.
어리버리한 트럭기사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왜냐면 처음 가본 곳이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모르면 바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세상, 인생들을 만나고 온 거다.
뭘 더 그곳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말하려 하기 보다 겸손히 듣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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