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소감문을 썼는데, 무슨 출사표 같다.
쓸 얘기는 더 많은데 그러면 소감문의 정체성을 잃을 것도 같고,
분량도 정해져 있어서 이 정도로만...


마음이 콩밭에 갔어요!
김민태

2004년 가을, 신대원 3학년을 마쳐갈 즈음 내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귀농! 남들은 좋은 교회 전임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나는 몇몇 뜻 맞는 귀농학교 동기들과 귀농할 땅을 찾아 다녔다. 그 때 나는 온통 생태적 삶, 순환이 있는 삶, 소비가 아닌 생산적 삶에 대한 간절함에 흠뻑 빠져있었다. 결국 이듬해 2월 삶의 근거지를 경북 상주시 모동면으로 옮기고야 말았고, 초짜 농부로 밭농사도 재미나게 지어보고, 포도농사는 뜻밖으로 알찬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그 농부의 때를 추억하는 지금, 내 마음은 다시 콩밭에 가 있다. 이번엔 진짜 콩밭이다. 연해주의 드넓은 콩밭이 눈만 감으면 손에 잡힐 것 같다.
사실 연해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는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물론 몽골이나 중국 등 땅이 넓은 나라를 가보지 않아서 그렇긴 하지만, 연해주가 그런 곳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어디든 가보지 않고는 말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녁시간에 걸었던 우정마을 주변의 초원, 거기서 발견한 대지에 걸려 있는 네 개의 하늘! 끝이 보이지 않는 콩밭, 그래서 호미를 들고 콩밭 매어보겠다던 소망은 날아가 버렸지만, 어딜 가도 금세 지평선으로 변해버리는 사방의 전경들... 신기한 것은 그런 풍광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왠지 친숙하고, 따듯했다. 어떤 이들은 연해주를 포함해 북간도, 심지어 사할린까지도 우리나라가 되찾아야 할 땅이라고 주장하며 캠페인을 하는데, 그건 좀 심한 것 같고, 최소한 우리나라의 땅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의 땅이라고는 말 할 수 있겠다 싶다. 그것이 편안함의 이유가 아닐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땅을 더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닌 걸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 온 종일 걸어보고 싶었다. 호수에서 물장난(혹자는 수영이라고 하겠지만)을 하고 나와서 밀키스 하나 들고(다른 분들은 맥주) 걷게 되었을 때, 비록 아스팔트길이긴 했지만 표또르(현재 한국인 가이드)의 트럭이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연해주를 다녀온 후에 하도 연해주 이야기를 해서 주변에서 그만 좀 하란다. 정말 갈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은 나도 나에게 하고 있다. 사실 이 나이에, 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내가 그 곳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 텐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일까? 러시아어는 물론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리고 배운 건 최근에 사회복지 공부 좀 한 거고, 이과도 아닌 문과에 신학공부밖에 한 것이 전부니 뭐에 써먹을 수 있을까?
장자의 얘기를 빌려와서 무용의 유용함을 보여줄 때까지 버텨볼까? 최소한 좀 더 젊기라도 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표또르 정도 수준은 되었다면... ㅋㅋ 또 한편으로는 “네가 짧은 기간에 좋은 것만 보고 온 것 아니냐”는 질문도 가능해 보인다. 그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경험한다면 며칠 못 살고 도망쳐 올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난 ‘그래 겨울에도 가봐야겠다’는 호기가 생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꿈이 있니? 꿈이 있다면, 그 꿈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맞지 않을 때는 그 일을 바꿔야 하는 거야! 그 때는 10대이든, 40대든, 70대든 상관없어!’
그럼 나의 꿈은 뭐지? 1차 귀농을 할 때 이후로 변하지 않는 나의 꿈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자연의 순환의 한 지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꼭 농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업이 농부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농부가 되고 싶은 거다. 뭐 내가 튼튼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쪽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왠지 처음부터 그런 삶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난 이 연해주가 아니라면 또 다른 ‘연해주’를 찾을 거다. 고생스런 삶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의 햇수를 더할수록, 교회에서 짬밥이 늘어 갈수록 더욱 간절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연수는 나의 마음을 다시 콩밭으로 가게 했다.

‘하나님, 아~ 어쩌죠. 제 마음이 콩밭에 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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