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다시 시작, 물론 부담은 만땅으로 가지고 있다가...
레위기라는 큰 산을 넘어 보자! 영차~

 

타는 냄새가 향기가 될 때

레1

1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 가운데서 짐승을 잡아서 나 주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라.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되기위한 교과서이자, 제사장들에겐 직무 매뉴얼입니다.

사실 제사장에겐 삶의 지침서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 지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제사규례는 1장부터 7장까지 집중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를 읽으면서 그 제물이 뭔지, 또 그 절차는 어떤지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 제사규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미 출애굽기에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될 듯한데,

소(송아지), 양, 염소, 비둘기를 바치는 행위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성막 역시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이었듯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뭐가 부족해서 초라한 천막집이 필요하시겠습니까?

온 세상을 만드시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또 뭐가 부족하셔서 짐승을 태우는 고약한 냄새를 향기로 받으실까요?

그래서 단언컨대 사람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 지금도 짐승을 불살라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시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맞추어진 방식으로 사람을 깊이 배려한 과정이 제사로, 예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절차를 따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순서 안에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은 그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어김없이.


하나님을 향해 하는 모든 과정에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제물에 시야가 좁혀지면 안 됩니다.

그것이 비추어주는 외형에 얽매이면 그 이면에 자리한 하나님과 자신의 존재가 소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어느 것도 나와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책상위에 놓여 있는 연필 한 자루 역시 나를 반영하고 나는 그 연필을 반영합니다.

그러니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과의 상생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만약 소, 양이나 염소, 비둘기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제물은 자신과 상관없는 어떤 것이 아닌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제물을 죽이고, 각을 뜨고, 태울 때 자신 역시 죽임당하고 각이 떠지고 태워지는 것임을 동시적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를 포함한 제사는 단지 금전적(제물의 비용) 헌신을 넘어 나 자신 전체를 드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에 붙는 ‘흠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제물의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제물을 들어 바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해진 순서와 양(量), 기준들은 그 만큼 하나님을 향한 집중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의 현장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 불가능하면서 어찌 그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겠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제물과 하나 되어 찢기고 태워질 수 있을 때 그 것은 진정한 제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향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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