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빼먹지 않고 쓰려고 했는데 토요일과 주일에는 아무래도 무리인듯 하다.
주일은 주일 대로,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해야 하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이끄는 40년이라는 거창한 주제이지만,
실은 매일 성경을 읽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이 담긴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줍잖은 글이라도 매일 빠짐없이 기록을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도 어느정도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욕심을 가지면 글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 질 것 같다.

나름 성경을 읽을 때 가지는 원칙을 정리해 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는 않다.
'돌소리의 직관으로 성경읽기'라고 해 볼까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월요일이 다 가고 밤이 되서야 또 한 장을 마무리 한다.
 

시간의 주인

출8장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초라한 행색을 한 두 노인이 전하는 말을 듣게 된 바로의 기분은 어땠을까?

혹시 강대국의 사신이 대단한 위세로 수백 수천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면,

그래서 그들이 전하는 선전포고를 접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가 조금은 위축되었을까.

노예로 일하고 있는 자들이 보이지도 않는 자신들의 신이 자신들을 놓아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으셨더라도 대개의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은 바로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계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면서 바로의 시건을 끌만한 그 어떤 것도 그들에게 덧입혀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선 굳이 그런 일을 하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인간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할 만한 그 어떤 화려한 장식이 위세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과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전해지고, 그 이름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들이 현실로 드러날 때

그 누구도, 어떤 권력도 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으로 시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고통도, 두려운 일도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사는 어리석은 인간의 행태이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재앙들이 그저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약간 귀찮은 일일뿐 그것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 심하다 싶으면 그들을 불러 몇 마디 말로 달래서 중지 시키고,

또 그렇게 그 재앙이 멈추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다급한 일이 있을 땐 달려와 무릎 꿇고 눈물범벅이 되어 기도하지만

그 일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가 버리면 또 등 돌리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렇게 바로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의 재앙을 각각 개구리, 이, 파리로 내리신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바로는 재앙을 모면하기 위해서 모세와의 대화를 시도할 뿐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는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들이 따라 할 수 없을 때에야 그나마 하나님을 인정하는 술객들이 어쩌면 그래도 지혜로운 것이다.


이런 시간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의 이름은 이스라엘 족속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라고,

애굽의 백성들의 기억 속에 새겨지고, 주변의 나라들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가공할 재앙이 네 번째에 들어서면서 고센 땅이 구별된다는 것이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까?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임한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자신들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분명하게 보고, 깨달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세에 대한 신뢰가 더욱 확고해 지고, 그가 명하는 것을 조금도 빠뜨림 없이 따르게 된다.

모세에 대한 믿음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직결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당신의 백성 삼으시려는 계획을 쉬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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