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한국코치협회에서 월 초에 진행하는 코칭카페에 다녀왔다.
코칭이나, 코칭과 관련된 정보를 나누면서 코칭 스킬을 업 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엑션 러닝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 도구로 포스트잇을 사용한 브레인 라이팅을 경험하게 됐다.
교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나 혼자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요한 이유는 선생님들이나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너무 짧은 데 있다.
그런데 브레인 라이팅을 사용하면 짧은 시간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결론까지 도출해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약간 흥분하게 했다.
이와 같은 창의적 방법들을 모르고 일방통행적 소통만을 해 온 것도 반성을 했고,
당장 이 번 주에 응용해서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출애굽기 이하를 통해 만나는 모세는 듣는 것을 잘 한 지도자인 것 같다.
그는 말 뿐만 아니라 마음도 잘 읽었다.
백성들의 아픈 마음을 넘어 하나님의 깊은 속내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더 낮추어 하나님께서 행하시도록 했고,
백성들의 부당한 원망과 분을 최선의 태도로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선생님들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어떻게? 잘!
 

절망에서 희망으로 

출5장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면서 바로의 반응을 예견하셨다.

바로라는 세상 권력, 혹은 사악한 세력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가르침이나 교훈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면서 갖은 수단을 강구하여 저지하려 한다.

모세는 그 첫 저항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요사이 교회가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뜻과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단, 즉 정통에서 끝이 다른 집단을 부르는 말인데,

때때로 교회의 지도자들의 태도를 볼 때 이단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교리상의 다름을 떠나 그들이 취하는 말과 행동의 끝이 하나님의 그것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다는 그 일의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잇속을 차리게 된다면,

자신이 힘을 얻고, 영향력을 증대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것이 이단이 아닐까.

그래서 ‘교회 속 이단’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지도자들을 생각할 때 모세라는 지도자는 그들과 정 반대의 자리에 서 있다.


자신이 지도자의 자리에 서기를 한사코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백을 뒤에 두고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힘들어 한다.

혹 자신이 하나님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를 상대하는 일이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장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노역을 보며 모세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오히려 더 고통만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 때로 그 일이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현실을 배제한 채 밀어붙이는 것은 폭력일 수 있다.

마치 그 요구를 따르는 것이 신앙적인 것이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불신앙인 양 몰아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세의 태도가 그랬다.

이후에도 드러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맞추어 백성들을 인도하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그 보조를 맞추지 못할 때는 백성들을 등지고 하나님께 그들을 살펴 달라는 호소를 한다.


그렇기에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세에게 있어 출애굽기 5장의 공기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이제 희망을 보는 것은

이제까지는 바로가 상대한 것이 이스라엘 족속이었다면,

이제 비로소 바로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직접 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그 결말은 너무도 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그 기간을 참아 기다릴 수 있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그래서 현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이 오히려 더 악화 일로에 있지만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는 가슴 벅찬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고역이 심각하게 가중되고 있지만 이것이 바닥임을,

더 내려가지 않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안다면

절망의 신음을 더하는 것이 아닌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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