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다소 힘을 회복한 킴롱콜라의 아침, 주인 할아버지에게 포터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먼저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더니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손짓을 한다.

그 사람, 포터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쾌히 좋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렇게 그와 함께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이름은 '라릿 그룽'이었고, 당연히 전문 포터가 아닌

딸을 보러 처가에 온, 그 주인 할아버지의 사위였다.

며칠 일이 없으니 소일삼아 포터 일을 하기로 했던 거다.

 

라릿이 짐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걸을 때 필요한 몇 가지만 덜어 담은 배낭은 내가 맸다.

내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진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고,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니.

 

한결 가벼워진 몸(몸 상태와 배낭)으로 걸으니 언제 절망했던가 싶었다.

못 오를 것 같았던 촘롱에 앞장선 라릿을 따라 걸으니 두시간여만에 닿았다.

'김치찌개', '닭백숙' 등의 메뉴들을 강조해 선전하는 롯지들을 보니 힘이 났다.

포카라에서도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이 얼마나 땡기는 지, 하여간 이번 여정은 감기와의 싸움에 더해

네팔 음식과의 긴장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시간여 만에 점심을 먹을 순 없고, 앞에도 한식 메뉴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좀 더 걷기로 했다.

퍼밋을 확인받고 내리막길로 접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는 짐을 열어 비상약들을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이미 다 떨어져버린 감기약, 타이레놀, 고산병약에 비타민까지 쥐어주셨다.

와~ 이건 거의 천사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걷긴 걸어도 감기몸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들 덕분에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레킹을 준비하며 경계했던 것이 있었다. 

가이드와 포터를 대동하는 트레킹, 투어를 하듯 단체로 하는 트레킹.

그런데 결국엔 포터에 의지하고, 주머니들의 도움으로 걷게 되다니.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만과 성급한 판단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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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19. ABC트레킹 둘째~셋째날

킴롱콜라(1,715)


대부분의 롯지들이 길에 인접해 있다.

킴롱콜라에도 두 롯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나는 아래쪽에 있는 롯지에 묵었다. 

나야풀에서 간드룩, 간드룩에서 킴롱콜라까지 오면서 

세 자매 외에 트레커를 거의 보지 못한 것으로 대변되듯 

이 작은 롯지에 묶는 이는 나 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간드룩 코스보다는 란드룩 쪽 코스를 선호해서 그랬던 것 같다.

두 길이 합류하는 촘롱부터는 심심치 않게 트레커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킴롱콜라의 오후, 그리고 저녁은 쓸쓸함 그 자체였다.

몸도 마음도 약해졌는데, 홀로 보내는 공간은 적막감에 더 춥게 느껴졌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빨래도 못하고, 대충 행궈서 널어놓고,

저녁 시간 전에 불편한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 후 움추린 몸으로 겨우 나가서는 몇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디저트로 시킨 쌀푸딩을 단맛으로 겨우 먹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젊은 주인이 걱정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따듯하게 푹 자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 마디 건낸다.

숙소는 따듯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고, 난로라도 하나 넣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따듯하게 자라고 하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라는 말,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는 지 모른다.

말뿐이긴 했지만, 얼마나 고마웠는 지.

어쩌면 그 말 때문에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품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촘롱으로 향하는 길에 내려다 본 킴롱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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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500)-촘롱(2,170)


소소한 즐거움도 잠시, 결정적인 문제가 활화산처럼 폭발을 했다.

쿰롱단다에서 킴롱콜라로 내려가면서 몸 속에 세력을 키우던 감기 기운이 극에 달했다.

기운이 없어지니 다리도 떨리고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걸어야 하는 건가 깊은 회의에 절망감마져 들었다.


등산에서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짓누르는 짐의 무게에 저항하며, 풀린 다리가 접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고, 설상가상 오른쪽 스틱도 말썽을 부렸다.

 

겨우 강까지 내려왔는데, 다리로 가는 길에 돌담이 쌓여 있어 잠시 멈춰 섰다.
돌담 옆에 조그만 공간이 있긴한데, 지나갈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뒤에서 잡아 끄는 것 같은 배낭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배고픔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물이 많지 않아 만들어진 강바닥의 길을 따라 강을 건넜다.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는데, 멀리서 세 자매가 다리로 건너며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힘들게 건너온 강의 길이 다시 떠오르면서 힘이 쭉 빠졌고, 

다시 강뚝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왜 그리 가파른지, 한심해서 눈으로만 오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 자매가 오기 전에 후들거리를 다리를 끌고 겨우 오르고 올랐다.

 

이 때 정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목적지인 촘롱까지 갈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

중단한다는 것은 되돌아간다는것까지 포함한 결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뭐하러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또 오르는 수고를 앞에 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가중됐다.

문제는 목적지 촘롱은 킴롱콜라에서 '급격한 오르막' 2시간을 더 가야한다는 것.

도저히 더 갈 수 없다는 판단에 일단 킴롱콜라에서 예정에 없던 숙박을 결정했다.

어차피 여행은 변수의 연속인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이라 합리화를 하며.

한정된 기간 촘촘히 짜여진 일정으로 온 여정이라 전체 일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걱정도 되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온수가 나오냐는 물음을 던지며 결국 킴롱콜라에 짐을 풀었다.

역시 뜨거운 태양빛과 달리 숙소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온수가 나온다고 하니 위안을 삼을밖에.

일단 허기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피자와 음료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밖에 세 자매가 도착했고,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출발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선뜻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배는 고팠는데 막상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이 없어서 몇 조각 먹다가 내려 놓고 말았다.

따듯한 음료를 다 마시고 씻기위한 준비를 해서 샤워장 겸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아까 잘 될 거라고 했던 온수기가 고장이어서 온수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가 막히고 힘이 빠져서 주방에 가서 허탈한 표정으로 온수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고장이라고 한다. 아까는 온수가 된다고 해놓고, 참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주인 아저씨가 미안해 하며 따듯한 물을 한 통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온 온수에 찬물을 섞어가며 작은 바가지로 궁색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한 두번째 롯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포기했다는 절망감에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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