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레9장
7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아론_속죄제(송아지), 번제(숫양)
이스라엘 자손_속죄제(숫염소), 번제(송아지, 어린양), 화목제(수소, 숫양, 소제)

아론의 제사가 시작됩니다.
아론이 처음으로 드린 제사는 백성의 것도, 아들들을 위한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후에 백성들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한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만약 제사장이라면 오늘 누구의 제사를 드릴 것인지 얼마나 성공적으로 할 것인지에 집중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된 아론이 먼저 드린 제사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손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먼저 '나'입니다.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제사를 집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자신을 드리는 시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분주하게 봉사하면서
정작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에 집중하다 보니 홀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교회들은 그런 깊은 그리스도인을 원하지 않는 지도 모릅니다.
외형에 치중하며 소모적이기까지 한 교회의 자화상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일반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역자들의 삶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이 반영된 제물을 손수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하나님 앞에 세상을 등지고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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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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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나누다.
레8장
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3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제사장 위임식 : 속죄제(수송아지), 번제(숫양), 위임식(숫양)

성막의 제단은 그 제단을 사용할 자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을 위해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실로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이것을 지켜보는 백성들 또한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임식의 당사자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은 백성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출 18), 제사장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위해 세워집니다.
전자는 이드로의 충고에 의해, 후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워진 것이 다릅니다.
드디어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만남을 안내 할 사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방법보다도 안전한 방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아론이 출애굽 초반부터 협력자의 자리에 있긴 했지만 뚜렷하게 정해진 역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사장이라는 분명한 직임을 갖게 됩니다.
이로써 모세는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고,
아론과 더불어 그의 아들들에게도 함께 위임하면서 그 책임의 지속성도 보장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의 위임식은 하나님과 백성을 향한 책임을 나누는 예식이었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우려하는 마음도 들었겠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들을 감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사람을 하나 둘 세우며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민족을 세워갑니다.

목사로 안수 받는 임직식과 비교 할 수는 없으나 그 의미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배 목사들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오던 일들을 함께 짊어지자고 하는 일이 임직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수적 포화상태라는 것을 비판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게 된 것에 대한 축하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어떤 단체, 조직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환영하며 기뻐할 것은 함께 짐을 나누고 책임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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