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2,920)


시누와의 아침은 상쾌했다.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있긴했지만, 하루에 대한 걱정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저녁에 맛있는 백숙도 먹었고, 무엇보다 내 곁에 든든한 벗이 있다는 사실이 저절로 미소짓게 했다. 

길에 붙어 있는 숙소의 특성상 아침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했다.

먼저 네팔인 포터들이 큰 짐들을 짊어지고 지나갔고,

단체로 온듯한 한국인 트레커들이 뒤를 이었다.

시누아에서부터 핸드폰이 터졌기 때문에 카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거느라 여념없었다.


부인과 통화하는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함께 온 다른 사람과 걸으며 약간의 경쟁이 붙었는데,

그 사람은 평소 산악회에 속해서 산을 타던 사람으로 초반 자신만만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이 더 잘 걸었다고 하며 아내에게 보고를 하는 거였다.

'내가 잘 걸었다.', '내가 걸었다.'라며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했다.'가 귀에 꽂혔다.

이 길을 걸으며 '내가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길을 내고, 돌계단을 놓은 이들이 있었다.

곳곳에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숙소를 만든 이들이 있었다.

주문할 때마다 음식을 요리해 가져다 주는 이들이 있다.

내가 가지고 온 거의 모든 짐을 짊어져 주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짐 전달하고, 그 길 걷고, 그 집에서 먹고 머문 것 뿐이다.

물론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온전히 내가, 내 능력으로 한 것처럼 큰 소리 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녀 왔다든지, 함께 했다든지, 허락해 주었다든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빚을 진 일밖에 없는 것 같다.

길에 빚 지고, 숙소에 빚 지고, 음식에 빚 지고, 짐 진 어깨에 빚을 졌다.

시누와에서 히말라야를 향한 길, 자랑하지 않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빚을 더하며 라릿의 걸음을 좆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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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라릿과 함께하는 첫 날, 내 성향상 내 의지를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그가 이 길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의 판단을 존중하며 걷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촘롱을 통과했고, 바누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당연히 김치찌개는 없었고, 신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바로 윗집에 있었다는ㅠㅠ).

몸이 안 좋아 식욕이 없다보니 네팔음식은 입에 댈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팔까지 와서 신라면이 뭔가 싶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네팔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약과 음식을 크게 간과했다.

네팔음식이 먹을만하다는 여러 블로그들의 글을 신뢰했고,

약이 별로 필요없었던 이전의 여행경험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약과 입맛이 없을 때를 대비한 간편식이 날이 더할수록 더 간절했다.


거의 두 시가 다 되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최종 목적지인 시누와에 도착했다.

시누와에도 몇 곳의 롯지가 있었는데, 나는 맨 끝에 있는 곳에 묵었다.

해가 산을 돌아가는 바람에 길도 건물도 모두 산의 그늘 아래 잠겼다.

안 그래도 쌀쌀한데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에 한국말로 찬사가 달린 메뉴, 닭백숙이 있다는 것.

바로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닭백숙을 먹겠다고 했고,

그렇게 한국에서의 그것과 똑같은 맛에 감동하며 닭백숙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계곡 사이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마차푸차레는 더 없이 황홀한 경관을 드러냈다.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 어두워질수록 더 찬란해지는 마차푸차레를 감상하며 

함께하는 라릿과 롯지의 식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멈추지 않은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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