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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1. 4(목) 장신대 게시판에 쓴 글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떡과 사과도 받고, 밥도 그냥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날입니다. 가뜩이나 용돈이 궁한 형편에 민생고가 해결되고 간식까지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너무나 당혹스러움을 겪고 나니 이 모든 것이 솔직히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먼 길 오셔서 후배들에게 귀한 말씀 전해 주신 목사님께는 감정은 없지만, 그 상황에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며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제가 속한 공동체가 너무도 저를 답답하게 했습니다.
목사님의 입지전적 전기를 들으면 정말 감사가 있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추수감사예배에 적절한 분을 강사로 잘 모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의 말꼬리를 잡아서 죄송하지만, 지금 예수님을 믿어서 이룬 오늘 목사님의 모습과 그렇지 않았을 때 지게나 지고, 리어카나 끌고, 잘 하면 타이탄에 야채 실어서 광장동에 와서 팔러 다니는 농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당 단상 앞에 풍성하게 갖은 과일과 곡식, 채소들을 진열해 놓고 드리는 예배에서 그것을 만들기 위해(물론 하나님께서 물과 양분과 햇빛을 주셨지만) 씨 뿌리고 돌보고 추수한 농부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물론 목사님께서 이것을 목적하셨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나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그 무엇 하나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농부들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인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날 최소한 농부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이들. 하나님께 허울 좋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끝내지 말고, 정말 농부에게도 감사하십시오! 오늘만이라도.

사족을 달자면, 오늘 본문 말씀인 고전15:9-10에서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감사의 글을 남겼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만나서 망한 사람이 바울 아닙니까? 성경의 대다수의 인물들이 예수님 혹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망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이 왜 감사를 할까요? 하나님이 있어서, 다른 모든 조건이 최악이지만 하나님이 계셔서 감사한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농부가 망하는 나라입니다. 농부 하면 망해서 사람 취급받기도 힘들죠. 그래도 그 분들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땅을 놀리면 벌받는다고 아픈 허리 꾸부정하게,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손목으로 호미 잡고 밭으로 가시는 분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오늘만이라도 농부들에게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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