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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6.

'복음 안에서 동서 화해를'(땅에쓰신 글씨)에 실린 글

아영으로 가는 마지막 차량에 승차했다. 1시간 30분 가량 어르신 모시기 작전의 마지막 차량이 백전에서 출발한 것이다.
백전초등학교 앞에서 쩔쩔매며 어르신들을 대형버스에 모셔야 했다. "어르신, 시원한 차 안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단순한 말 만으로…. 순순히 차량에 탑승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면 가지 않겠다고 서둘러 자리를 뜨시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예정대로 차량에 탑승하시고 출발할 수 있었다.
사역을 오면서 내내 고민이 있었다. 선발대로 와서 작업을 할 때나 잠을 청할 때,"내일 과연 어떤 말씀을 드려야 어르신들께서 아영으로 순순히 가실까?"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목사님께서 어떤 말을 우리들의 입에 넣어 주실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목사님의 제안은 "납치"였다. 그냥 모시자는 것이었다.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말고, 차에 모시고 달려 버리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데에 부담이 없어졌다.
정말 어르신들을 만나 "내일 저희가 모실게요. 백전초등학교 아시죠? 거기서…."이렇게 끝을 흐리기만 하면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상상하시면서 오마고 허락하셨다. 생각보다 쉽구나.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백전초등학교를 그냥 지나갈 때 승합차 안에 타고 계신 어르신들의 어리둥절하신 모습, 왜 초등학교로 안 들어가고 대형버스에 승차하라고 하는지 의아해하시는 어르신들, 개중에는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마냥 좋아하시고, 고마워하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승합차 아홉여 대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경계를 넘었고, 대형버스도 두 번 넘었고, 마지막 승합차가 가고 있는 것이다. 양천.음천 마을에서 나온 차였다.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정원외 승차를 하고서, 어르신들 사이사이와, 문에 붙어 앉은 채로 차는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차일까? 그 안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전초등학교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는 직진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백전초등학교로 간다. 그러나 차는 좌회전을 했다.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88고속도로와 나란히 나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으로 난 국도로 들어선 것이다. 사역자들의 긴장과 영문을 몰라 하시는 어르신들.
"와 이리 가노?", "어데 가는데?, "백전초등학교 가는 거 아이가?" 차 안은 술렁거렸다.
차량 배차를 맡았던 나로서는 마지막 차라는 안도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몇 안 되는 사역자들은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며, 그 분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저희가 좋은 데로 모실게요."라는 말과 웃음 공세, 그리고 주무르기로….
한 어르신이 불안해하시며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그 때 옆자리에 계신 어르신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좋은 구경 다 시키네, 고마와라. 우리 이 차 타고 서울까지 가버리자!" 하시며 옆에 긴장한 어르신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와 불안한 게비지?""별 소리를 다 한다. 불안하기는…."
위기가 넘어갔다. 금세 길 옆으로 누렇게 얼굴을 드러낸 벼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함양의 그것보다 더 빠르다고….
이렇게 여기를 지났을 십여 대의 차들이 이런 긴장감을 경험했을까? 주여, 감사합니다.
차는 무사히 아영중학교에 도착했고, 아무 갈등도 반목도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잔치 마당에 함께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렇게 사역은 문이 열렸다. 영.호남을 넘나들며 벌어진 경로잔치와 마을잔치,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과 율동으로 한 팀이 되었던 노천성경학교, 그리고 청소년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녹아드는 사랑의 몸짓이 되고자 했던 부족한 내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또 다시 은혜로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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