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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깨어살리/돌소리 2006. 10. 26. 21:10
어머니께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서울에 올라가신다.
그러면 내가 하루 세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주로 여성들이 하는 일 중에서도 음식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 일인지 찐하게 체험한다.
음식을 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힘든 것 같다.

아무튼 하루 새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어떨 때는 아침에 늑장을 부리다가 거의 점심때가 되어서야 밥상을 차린다.
그러면 한 번에 두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어머니께서 밥을 하실 때는 좀 더 여유 있게, 때로는 두 끼니를 위한 밥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바로 먹을 만큼만 한다.
두 그릇 반이 정확히 나오도록 한다.
압력밥솥에 하기 때문에 반 그릇 분량은 정확하게 누룽지를 만든다.
밥을 먹은 후 누룽지는 최고의 디저트다.

요즘 전기밥솥들은 너무 잘 만들어서 누룽지가 눌지 않는다.
왠지 누룽지가 없는 밥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
누룽지가 없는 밥의 맛도 그러하거니와
밥 한 그릇 먹은 후 그냥 먹어도 좋고, 끓여 먹어도 좋은 그 맛있는 누룽지가 없다는 것은...

밥도 그러하듯이 사람 살아가는 데도 누룽지가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 가장 앞에서 고통을 당하고 딱딱하게 누러 붙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이 좀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들의 희생, 그들의 뜨거운 삶이 없다면 참 맛나는 세상을 보기 힘들 것 같다.

누룽지가 되자!

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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