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에서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하고 있다.
새벽기도회에 대한 막대한 부담을 갖고 있으면서도 벌써 두번이나 빠졌다.
그래도 전 교인이 책도 같이 읽고, 말씀도 같이 듣고, 소그룹으로 모일 수 있어 나름 유익한 기간이 될 것 같다.

40일... 나는 그것을 좀 패러디 해서 나름대로 출애굽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한다고 하지만 뭐 다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정리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듯하여 시작해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 40년을 생활 한 후 요단강 앞에 갈 때까지.

오늘은 그 첫번째, 출애굽기 1장의 이야기다.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출애굽 이야기는 출애굽기로부터 시작된다.

애굽으로 내려온 야곱의 후손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출애굽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이유는 애굽이라는 나라에 이스라엘의 후손이 더이상 머물수 없게 된 것이다.

애굽 사람들, 특히 왕이 봤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도 위협적인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를 두고 보지 못하고 고역을 시키고 결국에는 새로 태어나는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때 이런 애굽 왕 바로의 서슬퍼런 칼날을 막아선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도, 혹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지하 조직의 힘센 장수도 아닌 두 명의 여인이었다.



십브라와 부아

그래서 출애굽의 이야기의 진정한 시작은 바로 이 두 여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교훈을 깊이 새기는 것이 그들에 대한 최선의 예의가 되리라.


살아가다 보면 상황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가 문제다.

이제까지 가지고 왔던 삶의 원칙을 어겨가면서 까지 따라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힘이 없는 입장에서 힘 센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인데 나만 빠질 수 없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우리들을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만 선뜻 나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원하는 행동을 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들이다.


그러나 애굽 왕의 명령을 받은 히브리 산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칙을 따라 올곧게 행동하고 있다.

아무리 애굽 왕 바로의 공권력이 가공할 위세로 자신들에게 명령한다고 해도

그들은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우리들은 너무도 손쉽게, 이제는 어떤 고민도 없이,

세상적 흐름에 나를 실어 보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겨우 주일에 교회에 와서 종교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만 위안 삼을 뿐이다.

그런 일들은 우리의 목숨을 요구하지도 않는데...


이런 산파들의 목숨을 건 행위로 인해 아론이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산파들을 잇는 이들은 아므람과 요게벳, 미리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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