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을 따르기 보다는 인정을 따르는 것이 더 좋다.
왜냐면 일을 하면서도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정작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는 결격일 수 밖에 없다.
원칙도 지키면서 사람들의 형편도 배려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정을 따르는 것도 나름 원칙은 있는 거다. '사람'이라는 원칙이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 나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어 때로 힘겨울 때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시원하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모세의 온유함은 원칙과 인정을 적절하게 사용한 데서 오는 것 같다.
그러나 모세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모세에게조차 그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모세의 고뇌, 그것은 그 양쪽 가운데서 외줄타기의 긴장이 아니었을까?
나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
 

위치 파악하기

출6장

16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족보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레위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18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고핫의 나이는 백삼십삼 세였으며

20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성경에는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가운데 종종 족보를 등장시킨다.

누가 누구를 낳고를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한 부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족보가 나오면 그냥 넘어가고 싶어 한다(예, 마1).

그런데 성경을 쓴 사람들은 왜 족보를 중요한 자리에 놓고 있을까?

다른 곳에 있는 것은 그 때 이야기를 하고라도

출애굽기 6장에 나오는 짧은 족보는 무슨 의도, 의미일까?


5장까지 모세의 활동이 워밍업이었다면 6장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또 족보 앞부분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일의 무게를 짐작케 할 만한 ‘하나님의 출사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하나님의 출사표 다음에 등장하는 족보는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떠안고 진행시켜야 하는 사람이 모세인데,

그 모세라는 한 ‘사람’을 소개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모세의 위치를 분명히 하려하시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족보를 사용해 자신을 더 부각시키려 한다.

자신의 혈통의 우월감을 표시하거나,

출세한 자신으로 인해 별 볼일 없는 집안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한 족보의 의도는 모세가 당면한, 그리고 그가 책임질 일의 크기로 모세를 보지 말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이고,

그의 할아버지는 고핫이며, 아버지는 아므람이라는 것이다.

모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인적 존재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백성 중 한 명이라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조상이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모세 한 사람을 주목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한 사람과 함께 동역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출애굽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 역시 오해 하지 말기를 바라는 당부인 것이다.


위치...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지혜이다.

어떤 일을 맡게 되었을 때, 그 자리까지 자신이 오게 된 과정과

자신이 참여하게 된 일이 그 때까지 이어져 온 과정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어쩌면 모세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이와 같은 마음 자세로 지혜롭게 대처했던 것 같다.

모세라는 걸출한 한 인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결국 이 일을 이룰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인해 모세는 무거운 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신 있게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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