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레위인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으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인들이 제사장을 시종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뜻 보면 아론의 후손이 아닌 레위인들은 스스로를 작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딱히 군사적인 역할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기업(땅)도 변변히 가질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를 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앞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열번째 재앙이었던 처음난 것들(장자)의 죽음에서 목숨을 부지 하게 하셨기에
모든 처음 난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모든 집에서 장자를 내 놓도록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해서 레위인들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단지 한 지파, 때로는 소외된 사람들의 신분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의 장자를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집에서 장자들이 소중하듯이 레위인들은 모든 백성들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역시 한 지파로 이루어진 집단이 성막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모든 지파로부터 온 소중한 자들이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에서 더욱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성들이 해야할 일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니 백성들은 레위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백성들 앞에 어른이 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의 신분을 절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불평할 수 없고, 무시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만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되었지만, 그 하나님의 손에 의해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자신의 역할을 맞추어 갈 때 최고의 사람들이 바로 레위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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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하기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에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뭐든 흐트러져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정돈되고 질서를 잡을 때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대열을 갖추게 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삽겹줄이 더 단단하다는 잠언의 말씀 역시 여기에 합당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대오를 갖추는 것입니다.

자리를 정하고, 순서를 정하고, 위계를 정합니다.
이런 과정은 상호간에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별로 위치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성막이 있고, 레위인들의 거처가 있었습니다.
이동 할 때에도 성막을 중심으로 해서 앞 뒤로 배치됩니다.
이렇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닙니다. 
각각의 모습은 동일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게 해서 봤을 때는 그들의 위치가 정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와 관련된 정돈을 통해 하나님과 관련된 정신적 안전을 얻을 수 있었다면
군제를 개편함으로 해서 물리적 안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물리적 안전의 핵심 역시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 그 중심이 무너질 때 몸의 안전 역시 담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런 과정으로 통해 아말렉 같은 도적들에게 기습을 당하는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게 됐습니다.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고, 정해진 순서를 따른다는 것이 때로 갑갑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개성 없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따르는 이들이 모인다는 것, 그리고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삶을 생각하며
정해진 순서를 따를 때, 그것은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적 삶이 훈련된 사람이 또한 개인적인 영성을 지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 또한 하나님과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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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끄시는 40년은 레위기에서 끝나지 않고 민수기로 이어진다.
실은 레위기까 끝나면서 그들의 광야 생활은 겨우 1년을 조금 넘긴 것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 39년이 남았다고 보면 된다.
레위기에서만 멈춘다면 '하나님이 이끄는 1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최소한 민수기를 지나야 40년의 대부분을 거치는 거다.
다시 시작~

책임 나누기
민 1: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광야로 나왔고, 틀림없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일들만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실은 변함이 없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날이 언제이냐의 문제만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이 완성된 시점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계수하게 하십니다.

왜 백성들의 숫자를 세도록 하신 것일까요?
그냥 백성들의 숫자가 궁금하셨을까요?
혹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신들을 방어하도록 하려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백성들의 수로 힘을 과시하도록 하려 하신 것일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으나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서 백성들을 계수하게 하신 것은 
각 지파, 또 전체 이스라엘의 그 수에 걸맞는 책임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함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책임의 크기만큼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구 계수와 다른 점입니다.
다윗은 인구 계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힘의 크기를 알고 싶었고, 또 그 세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레위지파와 또 그에 속한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직임들을 맡아 갈 때
다른 지파의 백성들은 소외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의 적당한 위치를 주시기위한 기초작업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시고 있고, 레위인들이 할 일을 받았듯
이제 이스라엘의 백성들 각자도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한 책임을 나누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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