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이유! :: 2010/03/10 09:57
지난 주일 찬양예배에 채에스더 목사라는 분이 오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의 삶을 복음으로 해석하는 분이셨다.
절절한 말씀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말미에 담임목사님이 건강의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건강검진 결과 60대이면서 40대의 몸이라는 소견을 들었다는 말씀과 함께
"머리가 비어 머리가 아프지 않고, 가슴이 비어 가슴이 아프지 않다."
명쾌하다!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고통하고 있는 내가 비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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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든지 죽었든지 그리스도 안에 :: 2010/02/27 11:35
바울서신05_살전 4:11-5:11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해서는 참으로 많은 문제(신학적 주제)들이 복합되어 있다.
죽음과 부활, 지옥과 천국, 심판과 형벌, 구원 등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정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이 지금까지 의지하고 살았던 것들을 버리고
선택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예수를 믿는 삶은 이전의 삶과의 단절을 의미했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부분까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려움은 다른 말로 하면 고난이요 환난이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오늘의 삶의 힘겨움을 이길 수 있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장 예수를 믿고 그 분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던 사람이
침상에서 숨이 넘어가려 할 때 재림을 보지 못하는 것에 절망할까?
또 살아있는 사람은 그 상황을 목격하며 재림의 지연에 대해서 다른 마음을 갖게 될까?
사도 바울은 최소한 데살로니가에 편지를 쓰면서는 자신의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당황해 하며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먼저 가는 사람들, 또 정확히 언제 재림의 사건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의 강림 때 오히려 먼저 간 성도들이 일어나는 일이 있고,
그 후 살아있는 자들이 뒤를 따른다고 설득하고 있다.
정말 그럴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의 존재이다.
단순히 보장이나 보상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예수를 믿는 삶이 살든 죽든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빛의 아들임을 인식할 때(정신을 차릴 때) 내세의 삶 만이 아닌
오늘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0절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죽었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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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라! :: 2010/02/24 10:28
바울서신04_살전 4:1-10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하기를 원하신다고
바울의 육성을 통해 다시금 전해지고 있다.
거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거룩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진 상황을 뜻한다.
그렇기에 여기서 음란을 버리라는 것,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대할 줄 알라는 것,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 등이 부정한 것이 되는 이유이다.
즉 거룩이 하나님을 존재를 느끼는 삶이라면
그 반대는 하나님이 배제된 삶이다.
거룩이 하나님이 충만한 삶이라면
부정한 것은 하나님 아닌 것에 중독된 삶이다.
음란으로 대표되는 몸을 쫓는 삶이 부정한 이유는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음란한 삶을 우상숭배와 연결시킨다.
왜냐면 이 역시 하나님 아닌 우상에 중독된 삶이기 때문이다.
몸을 우상화한 것이 음란이라는 얘기도 된다.
오늘날의 인류는 내재화된 우상숭배 가운데서 스스로를 속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겉으로 교회 잘 다니고 신앙생활의 모양을 잘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에 비해 더 다양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
만약 바울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낸다면
정말 다양한 것들을 예로 들으면 거룩하라고 애타는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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