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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2. 서울역-인천공항2터미널-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

 

몇몇 항공사들이 서울역과 삼성동에 도심공항터미널을 운영한다.

체크인과 출국수속까지 진행할 수 있어 편리하다.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이득을 보려고 서울역에서 모든 수속을 진행했다.

이럴 경우 공항에선 승무원들이 이용하는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그렇게 공항철도를 이용해 공항에 도착하니 별 할 일도 없어

처음 대면인 2터미널을 신기한듯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승무원 입장통로로 빨려들어갔다.

호기심에 찬 눈을 깜박이며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고객님 공항에 도착하셨나요? 어디 계시죠?"

공항환전 직원의 전화였다.

달러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다시 전화를 한다고 하곤 움직이다가 깨달았다.

아뿔사, 난 이미 출국심사대를 통과해 출국장에 와 있었던 거다.

공항환전을 신청해 놓고 받지도 않고 그냥 들어와 버린 거다.

'출국장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주의사항을 읽었던 것이 뇌리를 스친다.

세상에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간혹 나와서 받아가는 이도 있었다는 말에 법무부 직원에게 문의하니

항공사 직원을 대동하면 나갔다 올 수도 있단다.

진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느끼며 직원을 찾아 헤매다

환승데스크에 문의하니, 개인적인 일로는 불가능하단다.

아니 세상에 공항에서 개인적인 일이 아닌 것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내 능력으로는 못 나가겠다고 알리니, 그대로 환불처리를 한단다.

 

수중에 네팔 루피가 좀 있으니 숙소까지 가는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여길 즈음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네팔에 입국하며 받아야 하는 비자비 25달러!

서둘러 환전소에 갔더니 출국장에서는 ATM출금이 안되고 오직 현금만 환전할 수 있다고.

이러다 네팔 공항에서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빌려볼까 싶어 약국도 살피고, 여기저기 보다가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고

점원에게 개인적인 부탁이라며 물으니 현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아~ 어찌할까 방법이 영 없는 걸까.

 

불현듯 2013년 파리의 경험이 떠올랐다.

문제가 생겼을 땐 바로 그 문제의 장소서 해결의 문이 열린다!

시간도 거의 다 되어 일단 탑승게이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네팔로 가는 직항 비행기니 트레킹을 위해 나선 이들이 많겠지 싶어 살피니

역시 복장과 가방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말문을 연 이들의 입에서 안타푸르나, 에베레스트 등 익숙한 지명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 연배가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고,

게이트 앞에 줄을 서며 자연스럽게 그 어저씨 바로 앞에 섰다.

평소 같았으면 한국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말을 건넬 생각도 안 했겠지만

이 날은...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혼자 가시나봐요? 어디 가세요?'

아저씨는 이미 다른 이들과 말문을 연 터라 쉽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쿰부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솔직히 아저씨가 하시는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었던 얘기는 못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용기가 나지 않기도 했고, 네팔에 더 가까이로 공을 던져보기로 한 거다.

 

그런데 티켓확인을 하면서 그 아저씨의 항공권을 슬쩍 봤더니 같은 열이었다.

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을까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이 아저씨의 자리가 바로 내 옆이었던 것.

일단 8시간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거다.

특별히 의도성을 갖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화는 꽃을 피웠다.

나도 나지만, 이 분도 홀로 떠난 여정에 말벗이 필요했고,

옆 자리에 들을 준비가 된 젊은이가 앉아 있었으니까.

때론 흥미롭게, 때론 지루하게 시간은 흘러 두 시간여 후면 카트만두에 도착한다고 운항정보가 뜬다.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꺼내야 할 때다.

큰 맘 먹고, 심호흡을 하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비자비만 어떻게 해결이 된다면 좋겠다고,

표정이 약간 흔들리시긴 했지만, 아저씨는 흔쾌히 30달러를 내어주셨다.

타멜에서 만나 현지 돈을 드렸으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계좌번호를 받아두겠다고 하니

뭐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고 하시면서도 가르쳐 주셨다.

결국 다음날 계좌송금을 했다.

숙소에 들어갔을 때, 너무 지쳐서 다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랑탕히말라야 트레킹의 첫 위기는 옆자리 아저씨 덕분에 일단락 되었다.

돈의 크기를 떠나 그 도움이 한없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위기를 넘어서며, 도대체 이번 여정이 어떻게 펼쳐지려고 이런 일을 다 겪나 싶어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되는 순간들이었다.

 

멀리 흘러내리는듯한 빙하를 배경으로 한 컷.

고개 하나만 넘으면 캰진곰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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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6일 ~ 28일, 카트만두

 

ABC트레킹을 간다고 준비를 하긴 했는데,

그 방향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옷이나 장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평소 몸 관리를 잘 하고 최상의 상태로 출발하는 것이 더 우선하는 준비였던 거다.

그 부분에서 나의 이번 트레킹은 실패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많이 배운 여정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까.

그 준비 부족으로 인해 비용은 더 들었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히말라야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안나푸르나(남봉)가 더 감동을 주고,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 것이 아닐까.

그 고생을 하고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다음엔 랑탕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해 뭐할까.

 

준비하면서 갈까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떠나길 너무 잘 했다.

킴롱콜라에서 중단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출발하기를 진짜 잘 했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와 장애를 꼽으며 못하겠다고 하는 말 하지 말아야겠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면 시간 문제이지 목적하는 곳에 닿아 있을 테니까.

내년엔... 랑탕? 쿰부?

너무 자연스럽게 다시 히말라야를 꿈꾼다.

 

나름의 대장정을 마치고 다시 찾은 카트만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카트만두.

대업을 이룬 후에 무엇이 눈에 들어올까만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꼭 봐야 한다고 손꼽는 곳 두세 곳 찾아보았다.

덜바르 스퀘어, 스와얌부나트, 파슈파티나트, 보우드나트.

외국인에게만 입장료를 받는 것이 거슬리긴 했으나

시간을 내어 보고 만지고 맡아보며 네팔을 더욱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수도이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예전 것들이

그대로 오늘의 것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어서인지

그 어떤 도시보다 더 편안함을 준 것 같다.

 

타멜 거리

 

 

덜바르 스퀘어

 

 

 

 

스와얌부나트(원숭이 사원)

 

 

파슈파티나트(흰두교 성지)

 

 

 

 

보우드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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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6. 포카라에서 카트만두 가기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길은 카트만두에서 왔던 길을 거슬러서 간다.

지난 번에 보지 못했던 반대편을 보기 위해 다시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게 이동하는 내내 고생스런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다름아니라 오전 시간 햇볕이 드는 자리였던 것.

빛이 과다하니 사진 찍는 것도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ㅠㅠ

그럼에도 보지 못했던 반대편은 본다는 것에 위안하며 더 따듯한(?) 여행에 만족했다.

 

참, 지도어플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으로는 200여 킬로미터 거리에 두시간 남짓 소요된다고 나오는데, 9시간 30분이 걸렸다.

시간 계산을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하고 신기하다.

 

 

1월 네팔 트레킹 준비하기

 

1월에 네팔에 오겠다고 하면서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다.

겨울이지만 한국의 겨울과는 다른데서 오는 복장 등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복장 준비는 그리 많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봄가을 산행 복장에 몇 가지만 추가하면 될듯 하다.

바지는 약간의 기모가 들어간 것이면 되고, 기온에 따라서 덧입을 수 있는 웃옷들을 준비하면 된다.

숙소에서 잘 때 난방이 안 되기 때문에 춥긴하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하 몇 십도까지 사용하는 침낭 필요 없고, 침낭 안에 넣는 라이너나 비상용 비비 같은 것은 더더욱 필요 없다.

 

포터를 고용할 경우를 대비해 카고백을 추천하는 글들을 많이 봤는데, 쓸데 없는 아이템이다.

내가 가지고 간 배낭을 주고, 작은 배낭 하나에 걸을 때 필요한 것들 넣어서 매면 된다.

여행사 소속의 포터 무리가 주로 큰 카고백 두어개를 묶어 매고 지나가는 것은 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달리듯 지나쳐 가는 포터 무리들이 그 길에서 가장 보기 싫은 풍경이었다.

암튼 여행사 통해 가는 것이 아닌데, 포터를 고용할 생각이 있다면 작은 가방 하나 더 가져가는 것 추천한다.

 

내 경우에는 눈이라면 산 봉우리 근처에 있는 것만 봤기에 아이젠이나 스패츠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1주일 후에 올라간 이들은 아이젠이 없어서 더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니 변덕스런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눈길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할 필요는 있을 거 같다.

 

길에서 만난 현지인들, 네팔인 트레커들은 그저 뒷산에 올라가는 것 같은 복장이었다.

청바지에, 온전하지 않은 끈이 달린 배낭에, 대나무 막대기에, 슬리퍼까지.

하지만 먼 곳에서 찾아가 생소한 환경의 여정을 걷는 트레커에겐 철저한 준비는 필수이다.

 

준비물(일반적인 여행준비물 외에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 중심으로)

 

*비자 - 입국하면서 받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있다면 한국(대사관이 성북동에 있음)에서 받아가면 좋다.

*의복(기능성)-베이스 레이어 웃옷2, 베이스레이어(팬티)2, 미들레이어 웃옷2, 보온 내복 하의2, 방한 바지(미들레이어)2

플리스 점퍼, 아우터 레이어 웃옷, 다운점퍼

*의복소품 - 양말3, 버프, 반장갑, 방한장갑, 등산용 모자, 스포츠타올(대)

*신발 - 등산화(발목이 약간 있는), 슬리퍼, 

*등산소품 - 스틱, 아이젠, 스패츠, 무릎보호대, 시계(고도기압계-선택), 헤드램프, 물통(폴리에틸렌 소재), 핫팩

*의약품 - 고산병약, 감기약, 비타민제 등

 

 

 

 

 

카트만두 들어가는 길의 모습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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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26. 포카라

 

택시가 도착한 곳은 윈드풀이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 겸 여행사 앞이었다.

함께 한 두 길동무들은 이미 윈드풀의 도움을 받아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라 주인장의 환대를 받았다.

나야 뭐 약간은 서먹하게 첫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트레킹을 마치고 쉬고 있는 사람부터 이제 첫 걸음을 떼야해 긴장 속에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부터

다양한 필요를 가진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제까지 그 어떤 곳보다 좋은 환전 환율이었다.

그리고 네팔 여행, 특히 포카라 여행에서 빼놓은 수 없는 패러글라이딩도 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믿을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더 우선적 요소가 아닌가.

숙소는 다른 곳을 잡았지만, 환전과 패러글라이딩으로 윈드풀과 인연을 맺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오라는 말에 약간 위축됐고, 절벽같이 생긴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더했다.

내 순서가 되어 장비에 몸을 넣고는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받았다.

하지만 뒤에 안전요원이 있어 알아서 해 줄거고, 나만 타는 것도 아니니 걱정은 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몸을 맡겼다.

그리고 시키는대로 뛰어 발을 드는 순간 물흐르듯, 아니 새가 날아오르듯 전체가 붕 떠오른다.

와~하는 탄성과 함께 날으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예상했던 무서움은 1도 없었다.

포카라여행, 아니 네팔여행의 진수는 역시 패러글라이딩이 아닐까.

바라만 보는 것도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직접 줄에 매달려 바람을 타는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참, 왜 아침을 먹고 오지 말라고 했는 지는 착륙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비행을 짜릿하게 경험하는 순간에.

 

포카라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이 많고, 특히 한인식당도 곳곳에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난 트레킹 중 허기졌던 속을 포카라 2박3일 동안 내내 한국음식(김치찌개)을 먹었다.

 

 

 

 

 

 

 

 

 

 

 

 

오후엔 산악박물관에 다녀왔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등반가들에 대한 기록물들이었다.

8천미터 이상 14좌를 등반한 한국인 등반가들을 따로 구별해서 전시해 놓은 곳에서는 자연스레 발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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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ABC트레킹 여덟번째날

지누단다(1,760)-비레탄티(1,050)-포카라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노천온천으로 마무리했다.
사진은 없지만, 하룻밤 사이에 ABC로 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누단다엔 비가 내렸지만, 시누와부터 더 안쪽은 눈이 내려서 길을 분간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젠이 쓸모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겨울철에 오게 되면 꼭 챙겨와야하는 필수품임을 다시 확인했다.

눈길을 걸어야했던 이들은 곤란을 겪었다고 하는데, 길 위에서 눈 구경을 못한 입장에서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을 지나 오스트리안 캠프로 향하는 길을 생략하고 바로 포카라로 가기로 했다.

뉴브릿지로 향하는 길 윗길로 가야해서 마지막 산악 트레킹을 해야 했다.

그동안 라릿의 몫이었던 배낭을 온전히 짊어지고 비를 맞으며 흙길을 오르고, 한참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써야 했다.

앞에 포카라로 데려다 줄 지프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 힘내게 했던 것 같다.

우리를 맞으러 10분여 걸어온 기사가 무척 고마웠다.

세 시간 넘게 산길을 달리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 4시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비레탄티,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퍼밋 확인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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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 ABC트레킹 일곱째날

뱀부(2,510)-시누와(2,340)-촘롱(2,170)-지누단다(1,760)

 

오르는 길, 첫 걸음의 긴장이 가득했지만,

되짚어 내려가는 길, 가벼워진 발걸음 만큼이나 마음도 편안했다.

ABC에서 멀어지니 한껏 당겨져 팽팽해진 고무줄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내리막이었다가 오르막으로 변한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 때처럼 길의 압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고, 그래서 안도하는 마음 컸지만, 썩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 길 위에서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이 배움의 여정이 끝으로 향하고 있느니까.

언제 다시 이 길 걷고, 산들을 마주 할 수 있을까 싶어 멀어질 수록 아쉬움은 더 커졌다.

그러면서도 마주해 힘겨운 걸음 옮기고 있는 이들을 보며 의기양양해 하는 내 모습이라니.ㅎㅎ

바로 삼일 전에 바로 내가 그 방향에 서 있었는데,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길이 줄어드는만큼 또 줄어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라릿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원래 포카라까지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내려가는 길 만난 젊은 길동무들 덕분에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별이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지누단다까지만 함께하고 그 이후로는 그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기로 한 것.

물론 몸도 많이 좋아져서 내 짐을 짊어질 수 있게된 것도 한 이유였다.

첫 인상은 무뚝뚝해 보였지만 내내 다정하게 함께해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꼭 다시 찾아 만나리라 다짐해 보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짧은 시간 석별의 정을 나누고, 킴롱콜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지누단다에서 이 길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만난 젊은 길벗들이다. 나를 남겨두고 둘은 데우랄리까지 갔고, 내가 MBC에 있을 땐 이들은 ABC에 있었지만,

결국엔 만나 포카라까지 함께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여행엔 베태랑들이라 도움도 많이 받았고, 힘든 여정에 위로도 많이 받았다.

지금 또 어디를 걷고 있을까 궁금하다.

 

 

 

 

5일 간 동행자, 안내자, 보호자, 길벗, 동생이었던 라릿과 이별의 아쉬움을 담아 한 컷 남겼다.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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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BC-데우랄리-도반-뱀부(2,510)

 

ABC트레킹을 준비하며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다음으로 미룰까 고민하기도 했다.

초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중단하고 쉬운 여행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돌아 다시 내려가는 길,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온 몸으로 했다는 뿌듯함에 들뜨고,

멈추지 않기를 잘 했다는 안도감에 신바람이 났다.

 

오른 길 내려가는 것이지만, 내리막은 오르막이 되고 오르막은 내리막이 되어 쉽지 않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래도 고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보니 오를 때보다는 한참을 더 갈 수 있었다.

데우랄리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 도반을 뒤로하고 다섯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에 뱀부에 도착했다.

 

뱀부의 맨 위에 있는 롯지 역시 라릿의 아내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킴롱콜라는 정말 작은 마을인데, 그 마을 출신들이 곳곳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덕분에 난 더 친절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물 한 병도 공짜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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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 ABC트레킹 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


짐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숙소에 두고,

이른 아침 가벼운 차림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올랐다.

라릿은 감기로 며칠째 귀한 감기약을 나눠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함께 출발했지만 되돌아가 숙소에 남아 있어서 간만에 혼자 걸었다.

MBC에서 ABC까지 두 시간 반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딱 두 시간 걸렸다.

손에 잡힐듯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저만치 멀어지는 안나푸르나와 밀당을 하며 느린 걸음 쉼없이 오른 결과였다.

 

마치 정상을 정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하고 두 팔을 높이 들기도 했지만,

내 종착지가 누군가에겐 출발지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르도록 허락해준 산에게 감사하며 겸손히 고개 숙인다.
사천 미터의 높이에 서서 감격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안나푸르나(남봉)는 거기에 사천을 더한다니 그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명백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 현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ABC에서 머문 한 시간여의 시간은 꿈같았다.

처음 올라본 높은 곳이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날 쿰롱단다 전에서 만나 킴롱콜라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류했던 네팔 젊은이들이다.

며칠만에 다시 만난 곳이 ABC였다. 반가움에 더해 휼륭한 독사진을 남겨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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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22. ABC트레킹 다섯째날-여섯째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느린 걸음이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막상 도착해 보면 별로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라릿은 이런 나의 걸음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잘 걷는 법이라고 격려한다. 

그렇게 걷고 걷다보니 멀게만 느껴지던,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그 마차푸차레가 바로 코 앞이다.

왜 세계 3대 미봉에 속하는 지, 또 네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지 알 거 같다.

한낮의 태양 아래서도 아름답지만, 석양을 마주할 때의 마차푸차레는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이런 광경을 봐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오후 3:30,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롯지는 한산했다.

앞서 간 이들은 어디 있을까. 대부분 ABC까지 갔다가 머물지 않고 저녁에 내려온다는 얘기.

2시간만 더 올라가면 그 곳이니 일찍 도착했으면 당연히 갔다오는 것이 맞을 거다.

욕심을 부려서 더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나에겐 내일도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제부터 벗이 된 형님이 도착했다.

라릿이 말했는지 방을 함께 사용하도록 배정이 되었다.

서로의 걸음을 격려하며 또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 중에 만나 한 부분을 나누는 벗들을 사귀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까미노의 길 위에서도,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도 그랬듯,

여기 ABC 베이스캠프 트레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어제 히말라야 호텔의 식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북적였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올라온 이들과 ABC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한국 사람들도 더 눈에 띄었고, 목적지에 다 다다라서 이런저런 중요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고생을 좀 덜 했을텐테 싶은 것들도...

특히나 가벼운 먹거리들을 챙겨왔다는 얘기에 아차 싶었다.

내가 이번 트레킹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했다.

약품과 먹거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실수라 해야 할 거다.

그럼에도 이렇게 MBC에 앉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으니 또 기막힌 일이고 말이다.

아무튼 고도에 걸맞게 4~5도까지 내려가는 숙소의 추위를 견디며 잠을 청했다.

 

 

미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석양에 물들어 아름다움을 뽑내는 마차푸차레

 

저만치 내일의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남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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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 ABC트레킹 다섯째날

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00)-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고도가 높고, 해가 들지 않는 길이어서인지 오전의 길은 한기가 느껴졌지만,

계속 걸으니 어제 느꼈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추위에 움쿠렸던 몸도 마음도 걸음을 더할 수록 풀렸다.

감기기운은 여전했지만, 약 덕분인지 많이 회복되어

라릿을 좇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더 일찍 출발했던 어제 만난 그 길벗 일행을 앞지르기도 했다.

 

한참을 걷고, 데우랄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둘째날부터 계속 점심 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다.

롯지가 나에게 맞추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전히 입에 맞는 메뉴가 없어서 결국 야채라면을 주문했다.

이틀 연속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니 약간 물리려고 한다.

신라면이긴 하지만 온전히 한국의 그것과 약간 맛이 달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참, 어제 라릿이 데우랄리까지 가면 안 되겠냐고 했는 지 이유를 알았다.

이 롯지는 라릿 아내의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그렇게 요기를 하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린 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안나푸르나 가는 길은 오르막길 끝에 평지길이 온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이렇듯 길과 강과 산이, 그리고 나무와 돌과 마른 풀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길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여전히 힘겹게 걷고 있지만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기를 정말 잘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숨바꼭질을 하듯 보일듯 말듯 숨어 있는 마차푸차레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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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1. ABC트레킹 넷째날-다섯째날

히말라야(2,920)


세시 조금 넘어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는데,

이들이 멈추지 않고 데우랄리를 목적지로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나니

나도 더 가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라릿도 시간여유가 있으니 데우랄리까지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늘 충분한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무리해서 더 걸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이 걸어 시간을 단축 하느냐는 의미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 이상의 목적은 없었으니까. 


히말라야 호텔, 이제 드디어 3천미터 높이에 근접한 곳에 이르렀다.

기우인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드는 장소였다.

마치 절벽 위에 홀로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포카라에서 구입해 온 고산병 약을 먹어야 할 때가 된 것이고, 샤워 하는 것도 삼가야 하니.

뭔가 넘어야 할 중대한 관문 앞에 선듯했다.

몸을 휘감는 한기에 잦아들지 않는 강물 소리를 따라 몸도 덩달아 떨렸다.

 

사람이 많으니 주문을 미리 넣어둬야 한다고 라릿이 숙소로 메뉴판을 들고 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식당으로 갔더니

트레커들과 현지인 포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트케킹을 시작한 후 처음 보는 대단한(?) 광경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칠 즈음

한쪽에 한국사람 세 명이 눈에 들어왔고, 반가운 마음에 합석했다.

그 중 한 중년의 남성이 몸이 안 좋아서 잘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졌고, 이후 여정의 좋은 길벗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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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 호텔(2,920)


약효 때문인지 몸 상태도 좋아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에 약의 도움을 받긴 했었지만, 이렇게 약이 고마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라릿이 덩달아 코를 훌쩍이며 약을 나눠달라고 해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며칠이 될 지는 몰라도 길동무인데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거저 받은 것인데,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촘롱을 넘어 시누와를 지난 후부터는 이전처럼 급격한 오르막은 없었다.

그럼에도 평지를 걷든 내리막을 걷든 마음은 늘 조만간 나타날 오르막길에 가 있었다.

당연히 평지의 만만함, 내리막의 수월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고

온통 오르막의 고단함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니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을 때, 평지도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을 수 있다.

지난 길 그리워 할 것도 앞으로의 길 당겨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마주한 길로 한 걸음 두 걸음 디디면 된다. 

그렇게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트레킹 넷째날, 그리고 라릿과 함께하는 둘째날 시누와를 출발해 

뱀부에서 차 한 잔 하고 물통을 채우고, 도반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들고 오는 라릿^^

 

 

도반과 히말라야 호텔 사이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롯지

이 롯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킴롱콜라 사람들이어서 라릿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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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 ABC트레킹 넷째날

시누와(2,340)-뱀부-도반(2,505)-히말라야(2,920)


시누와의 아침은 상쾌했다.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있긴했지만, 하루에 대한 걱정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저녁에 맛있는 백숙도 먹었고, 무엇보다 내 곁에 든든한 벗이 있다는 사실이 저절로 미소짓게 했다. 

길에 붙어 있는 숙소의 특성상 아침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했다.

먼저 네팔인 포터들이 큰 짐들을 짊어지고 지나갔고,

단체로 온듯한 한국인 트레커들이 뒤를 이었다.

시누아에서부터 핸드폰이 터졌기 때문에 카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거느라 여념없었다.


부인과 통화하는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함께 온 다른 사람과 걸으며 약간의 경쟁이 붙었는데,

그 사람은 평소 산악회에 속해서 산을 타던 사람으로 초반 자신만만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자신이 더 잘 걸었다고 하며 아내에게 보고를 하는 거였다.

'내가 잘 걸었다.', '내가 걸었다.'라며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했다.'가 귀에 꽂혔다.

이 길을 걸으며 '내가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길을 내고, 돌계단을 놓은 이들이 있었다.

곳곳에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숙소를 만든 이들이 있었다.

주문할 때마다 음식을 요리해 가져다 주는 이들이 있다.

내가 가지고 온 거의 모든 짐을 짊어져 주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짐 전달하고, 그 길 걷고, 그 집에서 먹고 머문 것 뿐이다.

물론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온전히 내가, 내 능력으로 한 것처럼 큰 소리 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녀 왔다든지, 함께 했다든지, 허락해 주었다든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빚을 진 일밖에 없는 것 같다.

길에 빚 지고, 숙소에 빚 지고, 음식에 빚 지고, 짐 진 어깨에 빚을 졌다.

시누와에서 히말라야를 향한 길, 자랑하지 않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빚을 더하며 라릿의 걸음을 좆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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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라릿과 함께하는 첫 날, 내 성향상 내 의지를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그가 이 길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의 판단을 존중하며 걷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촘롱을 통과했고, 바누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당연히 김치찌개는 없었고, 신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바로 윗집에 있었다는ㅠㅠ).

몸이 안 좋아 식욕이 없다보니 네팔음식은 입에 댈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팔까지 와서 신라면이 뭔가 싶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네팔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약과 음식을 크게 간과했다.

네팔음식이 먹을만하다는 여러 블로그들의 글을 신뢰했고,

약이 별로 필요없었던 이전의 여행경험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약과 입맛이 없을 때를 대비한 간편식이 날이 더할수록 더 간절했다.


거의 두 시가 다 되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최종 목적지인 시누와에 도착했다.

시누와에도 몇 곳의 롯지가 있었는데, 나는 맨 끝에 있는 곳에 묵었다.

해가 산을 돌아가는 바람에 길도 건물도 모두 산의 그늘 아래 잠겼다.

안 그래도 쌀쌀한데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당에 한국말로 찬사가 달린 메뉴, 닭백숙이 있다는 것.

바로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닭백숙을 먹겠다고 했고,

그렇게 한국에서의 그것과 똑같은 맛에 감동하며 닭백숙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계곡 사이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마차푸차레는 더 없이 황홀한 경관을 드러냈다.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가에 앉아 어두워질수록 더 찬란해지는 마차푸차레를 감상하며 

함께하는 라릿과 롯지의 식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멈추지 않은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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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9. ABC트레킹 셋째날

킴롱콜라(1,500)-촘롱(2,170)-시누와(2,340)


다소 힘을 회복한 킴롱콜라의 아침, 주인 할아버지에게 포터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먼저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더니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손짓을 한다.

그 사람, 포터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쾌히 좋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렇게 그와 함께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이름은 '라릿 그룽'이었고, 당연히 전문 포터가 아닌

딸을 보러 처가에 온, 그 주인 할아버지의 사위였다.

며칠 일이 없으니 소일삼아 포터 일을 하기로 했던 거다.

 

라릿이 짐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걸을 때 필요한 몇 가지만 덜어 담은 배낭은 내가 맸다.

내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진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고,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니.

 

한결 가벼워진 몸(몸 상태와 배낭)으로 걸으니 언제 절망했던가 싶었다.

못 오를 것 같았던 촘롱에 앞장선 라릿을 따라 걸으니 두시간여만에 닿았다.

'김치찌개', '닭백숙' 등의 메뉴들을 강조해 선전하는 롯지들을 보니 힘이 났다.

포카라에서도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국음식이 얼마나 땡기는 지, 하여간 이번 여정은 감기와의 싸움에 더해

네팔 음식과의 긴장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시간여 만에 점심을 먹을 순 없고, 앞에도 한식 메뉴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좀 더 걷기로 했다.

퍼밋을 확인받고 내리막길로 접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는 짐을 열어 비상약들을 이것 저것 챙겨주셨다.

이미 다 떨어져버린 감기약, 타이레놀, 고산병약에 비타민까지 쥐어주셨다.

와~ 이건 거의 천사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걷긴 걸어도 감기몸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들 덕분에 조금씩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레킹을 준비하며 경계했던 것이 있었다. 

가이드와 포터를 대동하는 트레킹, 투어를 하듯 단체로 하는 트레킹.

그런데 결국엔 포터에 의지하고, 주머니들의 도움으로 걷게 되다니.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만과 성급한 판단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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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19. ABC트레킹 둘째~셋째날

킴롱콜라(1,715)


대부분의 롯지들이 길에 인접해 있다.

킴롱콜라에도 두 롯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나는 아래쪽에 있는 롯지에 묵었다. 

나야풀에서 간드룩, 간드룩에서 킴롱콜라까지 오면서 

세 자매 외에 트레커를 거의 보지 못한 것으로 대변되듯 

이 작은 롯지에 묶는 이는 나 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간드룩 코스보다는 란드룩 쪽 코스를 선호해서 그랬던 것 같다.

두 길이 합류하는 촘롱부터는 심심치 않게 트레커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킴롱콜라의 오후, 그리고 저녁은 쓸쓸함 그 자체였다.

몸도 마음도 약해졌는데, 홀로 보내는 공간은 적막감에 더 춥게 느껴졌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빨래도 못하고, 대충 행궈서 널어놓고,

저녁 시간 전에 불편한 잠을 청했다. 

두어 시간 후 움추린 몸으로 겨우 나가서는 몇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제대로 먹지 못하고 디저트로 시킨 쌀푸딩을 단맛으로 겨우 먹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젊은 주인이 걱정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따듯하게 푹 자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 마디 건낸다.

숙소는 따듯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고, 난로라도 하나 넣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따듯하게 자라고 하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라는 말, 힘이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는 지 모른다.

말뿐이긴 했지만, 얼마나 고마웠는 지.

어쩌면 그 말 때문에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품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촘롱으로 향하는 길에 내려다 본 킴롱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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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500)-촘롱(2,170)


소소한 즐거움도 잠시, 결정적인 문제가 활화산처럼 폭발을 했다.

쿰롱단다에서 킴롱콜라로 내려가면서 몸 속에 세력을 키우던 감기 기운이 극에 달했다.

기운이 없어지니 다리도 떨리고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걸어야 하는 건가 깊은 회의에 절망감마져 들었다.


등산에서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짓누르는 짐의 무게에 저항하며, 풀린 다리가 접히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고, 설상가상 오른쪽 스틱도 말썽을 부렸다.

 

겨우 강까지 내려왔는데, 다리로 가는 길에 돌담이 쌓여 있어 잠시 멈춰 섰다.
돌담 옆에 조그만 공간이 있긴한데, 지나갈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뒤에서 잡아 끄는 것 같은 배낭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배고픔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물이 많지 않아 만들어진 강바닥의 길을 따라 강을 건넜다.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는데, 멀리서 세 자매가 다리로 건너며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힘들게 건너온 강의 길이 다시 떠오르면서 힘이 쭉 빠졌고, 

다시 강뚝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왜 그리 가파른지, 한심해서 눈으로만 오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세 자매가 오기 전에 후들거리를 다리를 끌고 겨우 오르고 올랐다.

 

이 때 정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목적지인 촘롱까지 갈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

중단한다는 것은 되돌아간다는것까지 포함한 결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뭐하러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또 오르는 수고를 앞에 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가중됐다.

문제는 목적지 촘롱은 킴롱콜라에서 '급격한 오르막' 2시간을 더 가야한다는 것.

도저히 더 갈 수 없다는 판단에 일단 킴롱콜라에서 예정에 없던 숙박을 결정했다.

어차피 여행은 변수의 연속인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이라 합리화를 하며.

한정된 기간 촘촘히 짜여진 일정으로 온 여정이라 전체 일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도 걱정도 되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온수가 나오냐는 물음을 던지며 결국 킴롱콜라에 짐을 풀었다.

역시 뜨거운 태양빛과 달리 숙소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온수가 나온다고 하니 위안을 삼을밖에.

일단 허기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피자와 음료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밖에 세 자매가 도착했고,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출발을 하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선뜻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배는 고팠는데 막상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이 없어서 몇 조각 먹다가 내려 놓고 말았다.

따듯한 음료를 다 마시고 씻기위한 준비를 해서 샤워장 겸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아까 잘 될 거라고 했던 온수기가 고장이어서 온수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가 막히고 힘이 빠져서 주방에 가서 허탈한 표정으로 온수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고장이라고 한다. 아까는 온수가 된다고 해놓고, 참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주인 아저씨가 미안해 하며 따듯한 물을 한 통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온 온수에 찬물을 섞어가며 작은 바가지로 궁색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한 두번째 롯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포기했다는 절망감에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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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8. ABC트레킹 둘째날

간드룩(1,940m)-쿰롱단다(2,210)-킴롱콜라(1,715)


배운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것이니 배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가져왔던 생활습관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 배움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번번이 실패를 맛봐왔지 않나.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힘겨워하고 있으니

지금 난 더없이 훌륭한 배움의 길에 있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한 걸음이 힘겨울수록, 혹독할수록 더 큰 배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음에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길을 간다.

힘들고 아프고 앞길을 예측할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수업을 받는 것이다.


간드룩을 벗어나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계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간드룩의 좁은 골목들을 지났고,

약간의 오르막과 긴 내리막이 이어져 있어 큰 어려움 없이 걸었다.

바로 담 넘어에서 웃으며 나마스떼 인사를 전하는 아이들이 있어 힘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접어 들었고, 산모퉁이로 돌아서 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땐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쿰롱단다로 향하는 오르막길 중간쯤에서 작은 체구의 젊은(어린) 동양인 여성들이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깊은 숨을 뱉어내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도 언어문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것이 보통인데, 힘이 들어서 더 갈 수 없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네팔 현지인들이었고, 세 명이 자매지간이라고 했다.

처음엔 잘 못 알아들어서 내려가는 중인 줄 알고 좋겠다고 했는데,

짐을 들고 앞서 걷는 것을 보고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 왔냐, 어디까지 가냐 등등 기본적인 정보를 대충 공유하긴 했는데, 정말 대충했다.

일회성의 만남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 후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재회했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아주 중요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여정 또한 배움의 시간이었고,

마치 뒷산에 온 것처럼 걷는 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내 모습에서

여러가지 생각하게 했으니 또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고 내리며 적적한 길에 길벗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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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18. ABC트레킹 첫째날~둘째날

간드룩(1,940m)


몸살 기운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만 하다고 여겼다.

해가 지는 시간에 접어들면서 한기를 느꼈지만 그것도 기온이 낮은 탓인줄로만 알았다.

얼마나 힘겹게 올랐든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부족하나마 온수도 나오고 

손에 잡힐듯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의 그 빼어난 풍광을 보고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에서 3대 뷰포인트 중 하나인 간드룩에 있는 것이니 더더욱.

뒤늦게 도착한 네팔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폼잡는 모습도 알게모르게 크게 위안을 주었다.


저녁은 7시정도에 가능했다.

주방에서 한참이나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단체 손님들은 객실에서 먹는 지, 아니면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먹는 지 알 수 없었다.

점심은 볶음밥 종류를 먹었으니, 첫 롯지에서의 식사는 네팔 전통 음식을 먹고싶었다.

한국사람이 먹기에도 무난하다는 그 달밧을 주문했다.

 


아마 간드룩에서 본 달밧이 가장 정갈하게 담겨서 나온 것 같다.

이후에 다시 먹지는 않았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보니 이렇게 깔끔하게 담겨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튼 처음 대면한 달밧!

닭고기가 들어있는 카레는 얼마나 자극적인지

한술 뜨고 혀를 찼던 마늘녹두죽이 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블로그들에서 먹을만 하다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입맛을 가진 것인지 궁급했다.

이후에도 한국사람들 중에 달밧을 주문해서 먹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독특한 카레 맛 때문에 다른 음식들까지도 먹지 못하는 경우는 봤다.

아무튼 몸상태처럼 입안 상태도 좋지 않아서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한 번으로 족한 달밧과의 첫 만남을 갖고 간드룩에서 트레킹 첫날 밤을 보냈다.


한국의 겨울처럼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데 난방이 되지 않으니 더 춥게 느껴졌다.

좁은 침낭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자니, 상쾌한 아침을 맞기 어려웠다.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비추는 따듯한 햇빛 덕분에 찌뿌둥한 몸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몸도 덥혀주고,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을 순식간에 말려주었으니.

그리고 어제 저녁과는 또다른 자태로 맞아주는 히말라야가 있어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 저기로 가고 있구나 싶어 그져 신기함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아침으로 먹은 구릉빵. 안나푸르나 지역에 거주하는 구릉족의 전통 빵이라고 한다.

 

롯지의 꼬마인데, 사진보다 훨씬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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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1,220m)-킴채(1,640m)-간드룩(1,94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에 깔린 돌계단들,

아마도 이 계단들에게 입이 있다면 할 말이 참 많을 거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기에 밟을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하느냐고 말이다.

쉼없이 지나가는 트레커들이 쏟아내는 불평에 억울함을 토로할 것이 분명하다.


계단이 왜 만들어졌을까? 결국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탈진 길에 돌로 가지런히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림에 편리를 도모한 것인데
너무 가파르다고, 너무 많다고 투덜대는 말들을 들어야 하니 기막힌 일이다.
그러니까 트레커들은 불평할 자격도 없거니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한 두 번 다녀가면서 주제도 모르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계단 문제는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힘들고 아픈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만큼 무리가 될 정도로 걸은 내 책임이고, 그만큼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가지 않은 내 책임이고, 몸 관리를 잘 못해서 상태가 안 좋은 내 책임이다.
간드룩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는 무릎이 아파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어 주저 앉아야 했으니 할 말이 없다.
까미노에서도 첫 날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듯이 히말라야에서도 그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더 걷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심신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겨우 간드룩의 입구에 다다라 너무 기뻐하며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했는데,
기쁨도 잠시, 끝나지 않은 오르막길에 또다시 얼마간 더 투덜거리고 말았다. 
더구나 반팔반바지 차림의 서양인 남성 둘이 계단을 뛰어오르며 지나쳐 가는데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포터들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고, 당나귀나 말이 지나쳐 가는 것도 괜찮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아무튼 그렇게 가이드북에 있는 소요시간에 틀림없이 4:30경에 롯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비록 죽을동 살동 올랐지만, 간드룩에서 눈에 들어오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들은 모든 시름을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멀리 있지만, 저 곳을 향해 출발했고, 한 고비를 넘겼다는 뿌듯함에 벅찬 저녁이었다.

 

 

 

 

 

 

 

ABC트레킹의 첫 숙소인 간드룩 Peaceful Lodge.

 

간드룩의 저녁,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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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1,220m)-킴채(1,640m)-간드룩(1,940m)



사울리바자르에서 킴채, 다시 킴채에서 간드룩 구간을 가이드북은 '급격한 오르막'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급격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직접 보고, 걸어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글로 읽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 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울리바자르에서 식사하며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갖고

이제까지 걸어온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초반 약간의 오르막과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못했다.

작은 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갔을 때, 드디어 그 놈을 보고야 말았다.

이게! 이게! 계단인가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뒤로 넘어지지 않고 잘 오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멈출 수 없어 한 발 한 발 내 디디며 스틱에 의지해 올랐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짐도 짓눌렀지만, 감기로 인해 좋지 않은 몸상태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솔직히 무척 당황했고, 상심이 되기도 했다. 

첫날부터 마음 상태가 바닥인데, 무슨 트레킹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왔다.

첫 계단의 중간 정도 올랐을 때, 위에서 젊은 서양인 여성들이 달리듯이 내려왔다.

'하이~'하고 인사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지나쳐 가버린다.

빨리 내려갈 수 있는 것도 부러웠지만,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한참이나 뒤돌아보게 했다.

나도 저들처럼 내려 갈 수 있을까, 그 날이 오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니.

그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는 지.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집들이 나타나고 가로지르는 도로도 나타났다.

잠시 눈이 마주친 현지인 아주머니는 전혀 표정이 없다.

밝게 인사만 해주었어도 힘이 났을테지만, 그 분에게 그럴 의무는 없는 것이니 탓할 순 없었다.

지도를 보니 도로를 따라가면 지그재그로 돌고돌아 수월하게 올라 갈 수 있을 같았다.

그러나 트레커의 길은 그 길이 아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계단이었다.

살짝 갈등을 하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트레커이지 자동차가 아니니까. 자존심이 있지.ㅠ


그렇게 사울리 바자르를 출발해 킴채를 지나 간드룩까지 장장 3시간 반 동안 걸었다.

사울리 바자르에서 보면 700미터, 나야풀에서 보면 900미터 가까운 높이를 올랐으니

단순히 걸은 것이 아니라 올랐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트레킹 첫 날 노포터 노가이드에 가파른 길을 오르며 도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지만,

내 발로 왔다는 것, 누구도 갔다 오라고 등떠밀지 않았다는 것만 명확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러운 여정이라 하더라도 불평은 내가 선택할 감정이 아니었다.

 

 

이 정도 계단은 (좀 과장하면) 거의 평지라 할 수 있다. 

 

 

힘든 가운데도 멀리 보이는 설산은 가슴을 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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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7. ABC트레킹 첫째날

포카라(850m)-나야풀(1,070m)-사울리바자르-킴채-간드룩(1,940m)


호텔 조식을 간단히 먹고 짐을 단단히 챙기고 길을 나섰다.

아직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 내 상태가 트레킹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준비한 것들은 적절한 것일지,

노포터로 올라가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 그 어떤 것도.

ABC트레킹의 출발점인 나야풀로 가는 교통수단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로 '일단' 호텔을 나섰다.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걸어서 가려고 할 만도 한데

머리 속이 하얀 상태로 나선 길이다.

전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글들을 봤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탓도 있다.

전적으로 내 상태의 문제였다. 몸과 마음이 풀어져서 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한산한 도로를 신기한 눈으로 살피며 걷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의 기사가 손짓을 한다.

나야풀로 간다고 하니 어서 오라고 반긴다. 그리고 1,800이라고 착한 가격을 부른다.

보통 2,500 전후라고 알고 있었고, 약간 늦은 출발이기도 해서 망설임없이 바로 올라탔다.

나야풀에 도착하기 전부터 흥정으로 피로감을 높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트만두와는 달리 깔끔하게 닦인 시내의 도로를 달리던 택시는 좌회전을 해서 좁고 꼬불꼬불한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기사가 경찰이 어떻다고 얘기를 하는데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암튼 길이 달라진다고 해서 비용이 더 드는 것은 아니니 기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좁아서 다른 차와 교행 할 때는 정말 아찔했고, 움푹 파여서 차가 들썩거리기를 여러 번

도로 정비하면서 공사중인 구간은 또 먼지 구간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려 나야풀 입구에 있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출발이구나. 배낭을 메고 스틱을 잡았지만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2,000루피를 주니 거스름돈을 팁으로 달란다. 그래, 내가 지금 정신이 없으니 좋다.

내려와서도 자신에게 연락해 달라고 해서 전화번호도 받았다. 암튼 내가 정신이 없으니 좋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으며 걸으니 마치 까미노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야풀을 가로지르며 걷는데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내 상태가 그랬다. 정상이 아니었다.

팀스 확인받고, 다리 건너 비레탄티Birethanti에서 퍼밋 확인받고,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멍하게 걸었다.

춥다는 1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흐르는 땀에 내가 지금 적절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뒤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이 발걸음을 더 무겁게 했다.

비수기라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잘 모르겠다.


점심을 먹을 예정인 사울리바자르Syauli Bazar에 정오가 되어 도착했다.

내려가는 중인지 오르는 중인지 서양인들 몇 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을 지나 

텅 빈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 주문을 하고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볶음밥과 바나나가 들어간 후식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밥요리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

삼분의 일은 남기고, 후식은 클리어 하고는 물을 병에 나누어 담고 길을 나섰다.

식사 중일 때 도착한 현지인들이 큰 눈으로 시선을 주는데, 내가 특이한 점이 있나 싶었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포터나 가이드들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난 그저 출발점에 선 초보 트레커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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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포카라


포카라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미비한 트레킹을 장비를 대여하거나 구입하는 것.

가장 필요한 것이 침낭*이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 현지에서 조달하려고 미뤄왔던 준비물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아웃도어 상점마다 장비 랜탈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침낭을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한 가게에서 대여용이라고 꺼내 보여주는데, 냄새나고 더러워 도저히 건네 받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구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비교적 저렴하고 ABC트레킹에서 문제가 없을만한 것을 받아들였다. 

좀더 발품을 팔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계속 찜찜했지만,

잠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체취에 찝찝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카트만두에서는 마치 홀린 것처럼 현지인 식당을 찾아갔었고,

그래서 부족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포카라에서는 한국식당이 눈에 확확 들어왔다.

대부분의 것에 낯설음이 가시지 않으니 식사라도 편하게 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식으로 밑반찬이 네다섯 개가 나오고 김치찌개가 나오니 긴장이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야~' 하면서도 한국을 떠난지 이틀만에 한국음식에 끌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이틀이 두 주 같이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칼한 한식으로 위장을 채우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여전했지만, 내일부터는 계획대로 갈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에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숙소*, 히팅이 된다는 말에 선택했다.

체크인을 하며 받아든 리모콘이 얼마나 반가웠는 지 모른다.

씻으려고 미리 실내를 따듯하게 하려고 온풍기를 틀었는데... 앞에 서 있을 때만 따듯하다.ㅠㅠ

실내 전체의 온도에는 그리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휴~ 그렇지 뭐, 이 가격대의 숙소가 얼마나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에 위안하며 내일을 위한 쉼의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무료조식도 제공하니 아침까지 걱정없이 잠을 청한다.

계획대로 내일 아침 일찍 이 호텔을 나설 것이니. 


*침낭, 짝퉁 노스페이스-10도, 64달러, ABC트레킹에서 전혀 문제없이 따듯하게 사용함.

*숙소, Kotee Home Hotel, 1박 조식포함 2,200, 추천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았음.


 

 

조식을 먹으려고 레스토랑에 앉았는데, 군인들이 줄지어 구보를 한다.

포카라에서 군인들의 행렬을 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별난 구경거리였다.

 

포카라는 히말라야가 품고있는 도시이다. 어디서든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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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포카라


여행을 하면서 은근히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인데, 

나 혼자서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쓸데없이 택시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강박 때문이다.

문제는 몸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ACAP Permit & TIMS Counter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어플에 Tims Office를 검색하고 건성으로 확인하고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성큼성큼 한참을 가서는 사설 여행사인 것을 확인하고는 힘이 죽~ 빠졌다.

자유여행에 일각연이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종종 경험하는 건성건성의 댓가다.

지도어플로 꼼꼼하게 확인하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가는데 얼마나 낙심이 되고 지치던지.

함께하는 이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힘든 것을 아니 대놓고 불평은 못하지만, 한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투어리스트 버스 파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있는 곳을 엉뚱한 곳으로 한참이나 갔다.

공항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도 된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으면서 한 헛걸음이었다.



그렇게 겨우 찾아간 ACAP Permit & TIMS Counter에서 또 어리버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퍼밋을 먼저 받고 팀스를 받아야 하는데, 팀스 카운터에 갔다가 저~쪽으로 가라는 손짓에 

퍼밋 카운터로 이동해서 서류작업을 다 하고는 달러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ATM에 갔다가 고장났다고 하고, 또 환전하려고 사거리까지 진땀을 흘리며 다녀오고. 

왜 이리 낑낑거리며 일을 진행하는지. 

꼼꼼하게 위치를 확인하고, 미리 넉넉히 환전을 해 두고, 

또 혹시나 하는 마음보다는 준비하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허둥지둥 하지는 않았을 거다.

팀스를 만들며 노 가이드, 노 포터를 외치는데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몸 상태도 안 좋고, 얼빠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어렵사리 퍼밋과 팀스*를 만들고는 스스로 해 냈다는 뿌듯함을 안고 숙소를 찾아 출발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 한 번 당해 놓고서는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 나다.

그 정도면 택시라도 잡아타고 갈만 한데, 또 그냥 낑낑대며 걷는다.

무릎, 허리, 등줄기에서 신호가 오는데 마치 잘 아는 길을 걷는양 힘찬(?) 모습으로.

그러면서 깨닫는다. 숙소를 잡아 놓지도, 어디로 갈 지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하여 뜨는 숙소들.

아직 리버사이드의 남쪽 초입인데, 거의 북쪽에 위치한 곳들(예를들어 윈드풀 같은 숙소)이 뜬다.

간다, 내가 걸어서 가고야 말 거다 하며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며 걷는다, 계속 걷는다. 

결국 리버사이드의 중간쯤 가서 멈추었다. 더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아고다를 검색해 후기가 괜찮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인접한 곳으로 정하고 들어갔다.

카트만두의 기억을 상기하며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히팅이 되는 곳!


계획대로라면 내일부터 ABC트레킹이 시작되는데, 지금 이 상태로 가능할까 의구심이 더 깊어졌다.

쿤밍과 카트만두에서 다운된 몸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고, 

네팔에서 두번째 날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마음 역시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일 출발할 수 있을까? 난 준비된 것인가? 


*퍼밋 2,260루피, 팀스 2,000루피. 

 달러는 받지 않음. 자료에 '20불' 이런식으로 안내하고 있어서 헷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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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6.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기


계획을 세우면서 살짝 고민했다. 비행기로 빨리 갈까, 버스로 느리게 갈까.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느린 여행을 선호하기에 오래 붙들고 있진 않았다.

비행기로 날아가며 히말라야를 더 가깝게 조망할 수도 있겠지만,

차창으로 지나치는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과 삶의 자리를 만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버스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결정이었지만, 네팔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한국 같으면 두세 시간이면 갈 만한 거리를 여덟 시간을 간다.

그만큼 차가 속도를 낼 수 없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차는 빨리 가려고 애를 쓴다. 왕복 2차로이다 보니 앞지르기를 많이 한다.

네팔의 앞지르기는 가히 곡예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반대 차선을 달릴 때, 그리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는 것도 조마조마한데다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피하고 원래 차선으로 돌아오는데 

심장이 쫄깃해 지는 건 나 뿐이었던 것 같다.


길 상태는 또 어떤가.

아스팔트길이긴 한데, 대부분 얇아서 깨지고 움푹 파였다.

특히나 아스팔트 도로는 옆으로 콘크리트로 가이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

바깥쪽부터 깨져 들어와 어떤 길은 차 한 대 지나갈만큼만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런 길을 요리조리 잘도 지나가는 차들, 기사들의 운전실력에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

그런 길에서 반대 차로로의 앞지르기가 더해지니 기막히지 않을 수 있나.

어떤 이는 척추뼈가 다 튀어나오는 경험이었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카트만두 시내도 그랬지만, 포카라로 가는 도로 역시 먼지 투성이였다.

도로 옆에 있는 나무들은 누렇게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광합성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길 곁에 딱 붙어서 지어진 집들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처지는 어떨까.

그럼에도 하나같이 얼굴 찌푸린 이들이 없고, 오히려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주목한다.

지나가며 잠깐 눈이 마주치는데도 아이들은 바로 손을 흔들어 준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어떤 만남도 없이 지나치는 버스 안의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그들의 따듯한 마음이 덜컹거리는 버스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첫번째로 정차한 휴게소와 화장실. 포카라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는 휴게소에 3번 정도 정차한다. 위 사진처럼 볼일도 보고, 간단하게 요기도 할 수 있다. 

 

 

 

 

 

포카라 투어리스트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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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숙소를 정하는 기준은 단 하나, 따듯한 물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고다를 통해서 이용후기를 검색해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았다.

가격은 1,800루피이고, 따듯한 물이 나오는 싱글룸이었다.

그러나 비용을 지불하고 올라와 짐을 풀면서 알게 됐다.

따듯한 물은 나오지만, 숙소가 너무 춥다는 것을.

숙소 자체에 난방을 위한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거다. 할 수 없는 일...

그래도 콸콸 나오는 따듯한 물에 위안 삼으며, 아니 감사하며 네팔에서의 첫날 지친 몸에 쉼의 시간을 가졌다.

어쨌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따듯한 물 하나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깊이 깨달았다.

이후에도 핫워터를 얼마나 외쳤는 지 모른다.


그렇게 추운 숙소에서 이불과 씨름하고는 포카라로 가기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Kanti Path(타멜 인근 도로)에서 오전 7시에 포카라로 가는 투어리스트 버스들이 출발한다.

비수기라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가려고 6:30에 맞춰서 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게(과장) 도로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를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고, 붙잡으려고 하지만 소신껏 버스를 고른다.

아무래도 비교적 외관이 깔끔한 버스를 골라 흥정을 하고 올라탔다.

타고 보니 내부는 거기서 거기 같다.

여행사가 아닌 직접 지불을 해서인지 좀 더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해 주는 것 같다.

아마도 내 착각일 수 있겠지만, 그랬을 거 같다. 700루피나 줬으니 그랬어야 했다!


낮설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들. 동남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친숙한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길이다. 

한 나라 수도의 길이 어떻게 이리 엉망일 수 있을까.

공사 중인 것인지, 방치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러니 흙먼지가 끊일 수가 없는 거다.

이렇게 도로같지 않은 도로를 무사히(!) 달리는 기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오른쪽 자리를 배정받고, 시종 창밖을 주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열심히 모든 광경을 담아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한 쪽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아, 그렇구나 아무리 내가 모든 것을 보겠다고 눈을 크게 떠도 결국엔 한쪽만 본 것일 뿐이다.
한쪽만 보고서 마치 전부 본 것처럼 떠들어 댈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겸손히 반만 봤다고 얘기하기로 했다.
아니, 아주 조금 보고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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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차장에게 타멜이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타멜 옆을 돌아 멀어지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해 준다.

아마도 내가 타멜을 여러번 외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듯 했다.

버스가 서행하는 적당한 순간에 네팔식으로 도로로 뛰어 내려 카트만두 시내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치 이전부터 함께 걸어온듯 전혀 이물스럽지 않게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육교 위에서 도로와 건물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난 외국인이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도 나를 힐끗 주목한다..

물론 수많은 외국인들이 지나갔을 길이기에 긴 시선을 주진 않았다.


스마트폰 지도앱을 따라서 첫 식사를 위한 스몰스타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작은 식당은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언듯 얻은 정보에선 마치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 같았는데, 온전한 현지인 식당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전통 음료를 마시며 피어대는 담배연기와 말소리로 가득했다.

일단 들어섰으니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모든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뚫어져라 봤지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점원의 도움을 받으며 튀긴 채소 모모와 음료를 주문했는데, 머리를 갸우둥 한다.

양이 적을 거라는 신호다.

그래서 국수 비슷한 것을 추가 주문했다.


모모는 네팔식 만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모모~ 소의 채소가 거의 살아 있는, 생마늘 맛이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그나마 튀겨진 만두피 맛에 의지해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추가로 주문한 국수, 국물은 괜찮은데 면을 먹을 수가 없어 거의 남겼다.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들을 너무 믿을 것은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식사였다.

어쩌면 이 때부터 내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어두워져 조명 밝힌 타멜 거리를 걸어

아고다로 검색한 숙소를 찾아 가격 흥정해서 첫 쉼을 위한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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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5-16 카트만두


장장 20시간 가까이 걸려서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1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듯한 공기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허름한 공항의 시설들에 실망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눈에 정감있고 편안했다.

당장 필요한 돈만 환전*하고, 유심칩*을 구입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축적한 정보를 좇아 호객하는 택시기사들을 뿌리치고 공항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배낭 맨 외국인이 택시를 타지 않고 공항 밖으로 걸어가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정문을 지나 왼편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문제는 버스에 써 있는 글씨를 읽을 재간도 없고, 짧은 영어로 일일이 물어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카페에서 얻어온 자료를 바탕으로 '라트나 파크'를 물으며 한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는 예상한 길을 따라 타멜 거리 쪽으로 덜컹거리며 달렸다.

덜컹거리기만 하면 괜찮은데, 자동차들이 일으켜 날리는 흙먼지는 압권이었다.

더구나 그 먼지 속을 버스는 문을 열고 달린다.


네팔의 수도 답게 곳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라트나 파크 인근의 공터는 축제라도 벌어진 것인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먼지 반 공기 반인 열악한 시내를 통과하면서도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쿤밍과 비행기에서 쌓였던 피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드디어 카트만두에 오고야 말았다!


*환전-환율은 카트만두가 포카라보다 좋고, 제일 잘 쳐주는 곳은 포카라 윈드풀임.

*유심칩-네팔텔레콤, 3기가, 30일, 시누아까지 터지고 뱀부에서도 간간이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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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15 쿤밍


네팔, 특히나 안나푸르나는 막연한 짝사랑의 이름이었다.

이제나저제나 나의 발길 닿을 수 있을 지 바라만 본지 수 년이다.

드디어 이래적인 추위에 떨고 있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네팔로 향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트레킹이기에 준비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

더구나 낮은 기온으로인해 비수기인 1월에 꼭 가야할까하는 고민으로 중단될 위기도 있었다.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준비를 거듭한 끝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공항을 서성인다.


여행은 공항만 오면 끝이다. 

체크인 하고 출국수속을 마치면 내 몸은 준비한 여정을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이륙을 기다리는 항공기 안에서 여행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더구나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에 아무도 타지 않을 때는 거의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한 공항에서 긴 환승이 있지만 40만원 초반의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하는 중국동방항공에 새삼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벽 3시경에 도착한 쿤밍 공항은 낭만적이던 모든 기대와 안이한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수화물처리를 하지 않아 입국수속 후 가장 먼저 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앞이 캄캄했다.

열 시간 이상을 머물러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던 거다.

그냥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일단 공항 어디에서도 달러나 카드를 받지 않았다. 위안화가 필요했다. 환전소도 없었다.

오로지 현금인출기만 몇 곳에 있을 뿐이었다.

결국 큰 수수료를 지불하고 200위안을 찾아, 만원인 캡슐텔 앞을 서성이다 환승객 라운지로 갔다.

100위안을 지불하고 쇼파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춥고 불편해 거의 가수면 상태로 시간만 보냈다.

아마도 이 때부터 감기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쿤밍에서 당혹스런 상황을 맞으면서 이번 여행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준비부족 여행"

난 뭘 준비한 걸까.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며 열심히 챙긴 것들은 뭔가.

등산을 위한 옷가지와 장비들 준비는 했지만, 세부적 일정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거다.

그렇게 준비부족 여행은 시작되었고, 하루이틀 더 할 수록 부족감은 더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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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문명의 시작점이자 유적 재료인 사암의 출처, 프놈 꿀렌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가이드북에는 멀고, 가는 길이 험해서 밴을 빌려야 하고, 그래서 단체로 가는 것을 권하는 곳이다.

그러면, 혼자 간 여행자는 가지 말라는 얘긴가.

세 번째로 씨엠립에 갔을 때, 프놈 꿀렌을 꼭 가보고 싶었다.

태국에서 넘어올 때 만난 한국친구가 함께 가기로 하고,

뚝뚝 기사에게 연락해 승용차를 섭외하여 가게 되었다.

기사에게 산길을 오르는데 문제가 없냐고 물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어서 먼지가 많고, 더 문제는 좁아서 

올라가는 시간과 내려 오는 시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쉽게 구분하면 오전엔 올라 가고, 오후엔 내려온다고 생각하면 된다(정확한 시간이...).


차 위에 붉은 먼지가 수북이 쌓이도록 오르고 올라 가

일단 사찰 구경을 먼저 하고, 내려오면서 기념품 파는 곳들을 둘러 본 후에

프놈 꿀렌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적인 링가들을 보게 되었다.

이곳의 링가는 사원에 있는 링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물 속에 요니와 링가를 일체로 해서 조각을 해 놨는데

링가는 약간 도드라질 뿐이다. 

오랜 세월 물살이 무디게 한 것인지, 원래부터 그랬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흐르는 물 속에 빈틈 없이, 또 수 없이 새겨져 있는 요니와 링가는

이들이 이 프놈 꿀렌에서 발원하는 씨엠립강 물을 신성하게 만들려고,

아니 얼마나 신성하게 여겼는 지 알 수 있다.


사찰 경내에 있는 링가 형상. 바가지로 링가에 부은 물이 요니를 거쳐 성수가 된다.


사진촬영의 재미에 빠진 승려들^^ 재미있다. 



물 속에 수많은 링가들이 새겨져 있다. 빈틈이 없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그 폭포...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에서 뛰어내려 더 유명해진 폭포가 있다.

폭포도 장관이고, 그 아래에서 수영하며 즐기기에 딱 좋은 깊이로 형성되어 있어서 좋았다.

수영복으로 어떻게 갈아입을까 걱정하고 내려갔는데,

세상에... 나무로 얼기설기 탈의실을 두 개 만들어 놓고, 또 옷 보관함을 만들어 놓고 돈을 받는다. ㅋㅋ

이런 곳에서 수영 한 번 해 줘야 여행의 맛이 아닌가. 고민할 필요 없다.

눈치보지 않고 뛰어든 물 속에서 시원함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역사의 숨결에 살짝, 아주 살짝 접촉했다는 느낌이랄까...

폭포 바로 밑은 너무 추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프놈 꿀렌엔 외국인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접근하기 어렵고, 또 짧은 일정으로 온 사람들의 우선순위에 들기 어려워서인거 같다.

그래서 더욱 프놈 꿀렌을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돌은 어디서 떠 갔을까 관찰하면서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운전기사 말로는 폭포 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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