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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기뻐하노라_막 1:9-11 :: 2010/12/17 09:45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단 하나다. 그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다.
그 이상 부연하거나 추가적 사건이 있을 필요는 없다.
요한복음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조롱받았던 곳!
뭐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끼워 맞추기식 논리도 필요 없다.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것을 굳이 힘들여 풀어 놓을 필요도 없다.
아직 유아일 때 이집트 구경을 했다는 것도.
얼토당토하지 않은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까지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사람이고,
그가 처음 드러난 것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부터다.
아마 요한도 처음에는 그가 자신이 얘기한 사람인지 몰랐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예수의 정체가 밝혀졌을 것이다.
하늘로서 들리는 소리 역시 예수님만 듣는다.
얼마나 감격적인 자기 확신인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것!
어쩌면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은 동일할 거다.
그러나 모두를 기뻐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당신께서 선택하신 유대인들조차 기뻐하시긴 어려워 보인다.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것이 그분의 삶 전체를 분명하게 해준다.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의 삶이 어떠할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셨을까.
매일의 삶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고,
결국 십자가가 현실이 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물러 서거나 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고(존재),
더불어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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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_막 1:6-8 :: 2010/12/15 10:07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 요한은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신다고 했다.
그럼 세례요한의 능력이 뭔가?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의 능력은 또 뭘까?
세례 요한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광야로 사람들을 끌어냈고, 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획기적인 일을 실현했다.
그럼 예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가르침, 병고침 등의 기적? 영적 파워(카리스마)?
이런 것들로도 예수님은 그 누구와도 구별되는 능력의 차이를 보이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 하나 더 있다.
바로 죽음의 능력이다.
온갖 고통을 다 받고 못박힌 십자가의 죽음,
그 길이 어떤 길임을 알고도 그것을 선택하는 그 모든 여정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이다.
물론 세례요한 또는 헤롯 왕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예수님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예수의 능력은 뭘까?
우리가 기대하고 고대하는 예수의 능력은 뭘까?
전자에만 있지 않나? 기적과 같은.
먹을 것, 질병에서 나음 받고, 명예를 얻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의 최종적 능력은 죽음에 있었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그 능력,
죽기까지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키가 된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인생들을 향한 사랑의 능력이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탁월한 능력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세례요한은 사랑이 아니라 정의에 가까웠고, 구별이나 분리였다.
광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또 정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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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길을 곧게_막1:2-5 :: 2010/12/07 12:03
막1:2-5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그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더라
세례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은 성전 밖으로 불러낸 것이다.
(당시 요한과 같은 이들이 더 있었다.)
그 때까지 성전과 그 성전의 사람들인 제사장들,
그리고 그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중심의 종교생활을 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삶의 안녕을 지켜주는 방편이었다.
그런 그들을 성전과 예루살렘의 밖으로 끌어 낸 것이 요한이다.
의례에 묶여 있던 하나님과 진리를 향한 갈망에 자유를 준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상황을 혼란으로 여기고, 경계해야할 사태라고 보았을 것이다.
상당히 기분 나빴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활동은 굳은 종교를 유연하게 하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는 것은 결국 들과 강에서 제사(속죄제, 화목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제사장이 연 어떤 야외 성소에서가 아닌 한 야인이 선 들녘과 강에서였다.
그러니 이 얼마나 예수님의 길을 잘 준비한 것인가?
예수님은 이후 당신 스스로를 성전보다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요한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던 말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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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시작_막1:1 :: 2010/12/03 14:31
1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시작이라는 것은 마가복음의 기록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고,
예수님의 삶에 대한 엶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도 그렇고, 또 예수님 전에도 사실은 복음은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 그 이상의 복음이 또 있을까?
예수가 그 하나님을 최고로 담아내었기에 예수님의 이름이 복음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 말씀을 읽을 때 그 속에서 시작되는 복음의 역사!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이 내 속에서 시작되고,
또 누군가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 그 곳, 그 사람에게 복음은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셨고,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아마 마가는 이 첫 문장을 쓰기위해 가장 고심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 안에서 그 순간 새롭게 떠오르는
예수님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그로 하여금 시작의 마음을 갖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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