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소리/日步'에 해당되는 글 11건

아프지 않은 이유! :: 2010/03/10 09:57

지난 주일 찬양예배에 채에스더 목사라는 분이 오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의 삶을 복음으로 해석하는 분이셨다.

절절한 말씀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말미에 담임목사님이 건강의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건강검진 결과 60대이면서 40대의 몸이라는 소견을 들었다는 말씀과 함께
"머리가 비어 머리가 아프지 않고, 가슴이 비어 가슴이 아프지 않다."

명쾌하다!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고통하고 있는 내가 비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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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기05_자격 없는 사람 :: 2009/10/17 01:06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볼 수 있고, 호흡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배설할 수 있고,
아픔, 시원함, 더위, 추위, 서늘함 등 내외부의 변화들을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걸어서, 차로 이동 할 수 있다는 것,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수없이 많은 누림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서 일까?

9월 24일 일요일
당신이 경험하는 일과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과연 당신이 이처럼 환상적인 체험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당신이 하느님이 어루만져 주실 만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만큼 특별한 사람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라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다. 당신이 이런 일을 누리고 경험할 만큼 한 일이 없다. (나웬이 러셀 슈와이카드의 글 인용) 마지막 일기, 헨리 나웬

자격이 없는 데도 받았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 만큼의 은혜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더 달라고 부르짖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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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기04_연결된 사람들 :: 2009/10/14 00:56

문화인류학 수업 시간에 ‘30살이 더 많은 사람으로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을 찾아서 심층인터뷰를 해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교수님이 과제를 내 주셨다. 하지만 수강생 대부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은 그러면 ‘자신이 30년 후에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까’를 질문하셨다. 30년 후에 누군가 나를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없을 것 같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오늘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수업을 마치고 11시를 넘기는 시간까지 모여 앉아서 두 주 남은 행사 이야기와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학원 동기들을 보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의 중간이니까 나를 중심으로 아래위로 10살이 훌쩍 넘으니 최고 20년도 더 차이나는 사이도 있다. 그런 연령 차이에다가 알게 된지 8개월 여 되는데도 얼마나 오누이 같고, 남매 같고 형제자매 같은지. 어쩌면 이렇게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들처럼 말이다.

9월 19일 화요일
오늘 나는 우리 삶이 수많은 형태로 연결되어 왔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일기 50p)

헨리 나우웬을 만났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만약 헨리 나우웬 신부를 알게 되었고,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았을까? 뭐 그 사정도 잘 모르고, 인간 헨리 나우웬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른다. 단지 그의 저작들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았을 뿐이다. 글이라는 것이 묘해서 그 사람을 다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교묘하게 진면목은 감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헨리 나우웬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그들과의 연결에 새삼 놀라는 대목에서 나는 뭘 그걸 가지고 그러나 하면서도 나에겐 그런 관계가 있는 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낮에는 친구가 목사 안수를 받는 곳에 다녀왔다. 내가 동기회에 회장 없는 총무라서 대표 격으로라도 가야했고, 또 평소 통화를 자주하고 지내는 편이었기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없이 다녀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관계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놀랄만하지도 않다. 19년 지속된 관계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들, 과연 그들과의 연결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삶을 정리하는 순간까지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와 30년 차이나는 이들은 지금 초등학교 1학년들이다. 그들과 진솔한 만남을 가지려하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 전에 20년, 아니 10년 차이라도 마음을 나누며 공존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한두 가지라도 서로에게서 담고 싶은 점들을 찾아 갈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그래서 오늘 목사 안수를 받은 친구도, 또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도,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도 귀하고 소중하게 만나고 연결해 가야겠다. 언젠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에 새삼 깜짝 놀라기를 바라며.

92년에 한 동기의 결혼식을 마치고 참석했던 친구들이 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여섯 번째 친구가 오늘 안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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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기03_시간과 피곤 :: 2009/10/12 17:48



프랭클린 플래너와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8년이다.
그와 함께 '시간관리'라는 테마는 나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그 분야와 관련된 강의는 나의 몫이 된다.
그럼 오늘 나의 시간관리를 잘 하고 있나?
물론 강의에서 누차 강조해 말하지만 시간관리는 곧 사건관리다.
시간의 실체가 사건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결국 나에게 쉼 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관리는 하는 것이 시간관리가 되는 것이니까.

나에겐 두 가지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의 시간과 나 혼자의 시간.
전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나의 시간이고, 후자는 그럴 필요 없는 나의 시간이다.

사람들을 의식하고 마주하는 사건들의 연속선은 진솔한 나의 시간일 수 없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사건들의 연속선은 긴장이 없이 흘려버리는 시간이다.
그러니 둘 다 나의 가치와는 상반된 시간들인 것이다.
결국 생각과 반대로 나의 시간관리, 즉 사건관리는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좌절로부터 오는 것이 피로가 아닐까.

9월 11일 월요일

자고 싶으면 잘 시간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엄청난 피로감 속에 깨어나
몸을 일으키는 것은 그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에 지독히 집착하는 편이다.
시간을 잘 활용하여 오래도록 염원해 온 계획을 실현하고 싶다.

의외로 헨리 나우웬의 시간은 피로감으로 가득하다.
시간을 본인이 원하는 일들로 채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 내야 하는 과정은 피로와의 싸움이다.
피로란 뭘까? 그의 인용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짐일까?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은 소망이지만
그 시간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자신의 마음의 지향과 다른 일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짐승들과 달리 피로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나의 시간관리, 사건관리 역시 피곤하다.
다른 사람 살피랴 피곤하고, 나 스스로에게 절망하느라 피로에 시달린다.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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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기02_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 2009/10/10 00:05

불행이 닥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내가 그렇다. 죽지 않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아파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몸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병들었다고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고 해야 한다.

삶이 고통스럽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나 오늘 헨리 나웬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불행과 고통이 복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그 불행을 내가 만났을 때 뒷문이 아닌 앞문으로 당당히 맞을 수 있다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까?

헨리 나웬은 추기경인 조지프라는 사람이 암으로 입원해 있을 때 만났던 일들을 추억하며
그의 아픔을 넘어 죽음까지도 교회에 선물이 되겠다고 일면 가혹할 것 같은 말을 적고 있다.

9월 7일
나는 조지프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병과 언제 닥쳐올 수 있는 죽음이
오늘날 교회에 그가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깊은 확신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에이즈와 암, 기아와 전쟁과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조지프의 병과 죽음이 아파하는 모든 사람을 진실로 배려하는 사목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끔찍한 불행을 겪으실 때
그 고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 보셨기에 그 사건은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불행도
그것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반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조심스럽지만, 나의 어떤 불행도 하나님께 유익하게 바꾸어내는 삶으로 당당히 나가고 싶다.
나의 죽음도 유익하다는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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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기01_기적이 따로 있나? :: 2009/10/09 00:44



1995년 9월 2일 토요일
나는 단 하루도 나의 내념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능한 한 솔직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서는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헨리 나웬의 마지막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매일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하루에 한 두 편씩을 읽으려고 한다.
그 여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며 성찰을 시도해 보고 싶어서이다.
어찌 내 주제에 헨리 나웬이라는 거목을 올려다 볼 수나 있을까 만은
성큼 성큼 앞장서 가는 아빠를 종종걸음으로 뒤쫓아 가는 아이처럼
그렇게 읽고 생각하고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9월 3일 일요일
기도는 무의식과 의식을 이어주는 다리다.
어쩌면 나의 기도, 하느님 곁에 있으려는 나의 노력, 하느님과 친교를 맺는 나의 방식을 버리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시도록 나 자신을 내맡길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기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기록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기도의 상태를 '어둠과 메마름'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로부터 기도가 돌처럼 무감각해졌다고 하더라도 성령께서 이끄실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리곤 그 다음 날 일기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인 우정을 기도에 비유한다.

9월 4일 월요일
기도하려는 나의 노력은 우정을 위한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와 우정은 정화를 필요로 하며 덧없는 감정에 덜 의존하고
한결같이 헌신하는 일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하는 말 '이 지혜를 따라잡으려면 참으로 많이 수양해야 한다.'
맙소사 이 영성의 대가가, 그래서 내가 쳐다 볼 수도 없을 것 같이 높은 경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수양해야 한단다.

나는 수양은커녕 기도에 무장해제를 하고 살고,
성령에게 맡기기는커녕 PC에 더 의존해서 삶을 연명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참으로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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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의 흔적이 있는지 :: 2009/10/07 02:40

실력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집중'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집중력이 나에게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산만 그 자체이다.
요즘 들어 부쩍 더욱 많이 느낀다.

내 상황으로도 그렇고, 내 생각으로도 당연히 집중해야 할 곳이 있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책은 다 읽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책 얘기만 들으면 일단 구입하려는 마음만 앞선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한 신령한(?) 전도사님 한 분이 오셨던 적이 있다.
이 분이 형과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산만하다는 거였다.
그 때는 그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일단 기분이 많이 나빴는데, 그 이유는 내가 형보다 공부를 잘 했기 때문이다.
더 산만한데 어떻게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전도사님의 진단(적절한 표현!)이 맞았던 것 같다.
형은 인생이 심플해서 하고자 하는 것을 한결같이 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 못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이리저리 흔들림이 더 많았던 것 같고,
특히 요사이 많이 산만한 모습을 보면서 더 그 말이 더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소망 중 하나가 뭔가를 집중해서 뚫는 삶을 사는 것 아닐까.
꼭 뭐를 뚫은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나의 인생을 살면서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의 집중을 한 흔적을 갖고 싶다.

집중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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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에 가입하다. :: 2009/10/03 00:28


기웃기웃 하다가 드디어 트위터에 가입했다.
블로그를 하면서 또 트위터를 한다는 것이 산만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한 번 발 담가 보기로 했다.

우선 김주하, 이외수, 노회찬의 Follower가 되었고,
누가 내 글을 구독해 줄 진 몰라도
주로 간간히 떠오르는 아포리즘을 올려볼까 한다.
그리고 독서 후의 정리에 부담이 있었는데, 편한 마음으로 마음에 와닿은 구절들을 올려야겠다.

많이 지져대야징 twitter~
http://twitter.com/dol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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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낮추기 전에 :: 2009/09/04 01:10

담임목사님과 부교역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나야 뭐 아직 비중도 없고, 내가 할 이야기도 제한적이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회의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을 때 '교육'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왔다.
내가 무슨 얘길를 했느냐를 떠나서 그런 자리에서의 나의 태도는 딱 두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조용히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말을 하되 높은 톤으로 한다는 거다.

문젠 두 번째!
말을 하더라도 차분히 해야하고, 내용은 전후 맥락 가운데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고,
앞뒤를 잘라내 버리니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해질 수가 없다.

왜 목소리가 커지고, 또 크든 작든 감정이 실리기까지 하는 걸까?
말에 감정이 실리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듣는 사람도 감정으로 듣게 된다.

예전부터 말하면서 감정을 실어서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는데
그래서 늘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 보면 내가 딱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전에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도 제대로 경청하지 않은 것이 된다.
어쩌면 잘 듣는 것을 못했으니 내 말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거다.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안정감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잘 듣지 못하고,
공격이 두려워 먼저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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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순간 :: 2009/09/02 23:29

참다운 영성적 삶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묶이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과거에 있었던 상처가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
미래 일어날 일들이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도록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바라보며
그 분이 아닌 것들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아파하고 가슴 조렸는가?
하루도 한 순간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거기에 더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작 나 자신을 버려두었다.
잘 하지 못할까봐, 실수할까봐,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버림받을까봐 움츠러들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걸...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낀다면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

내일 나와 관련해서 한두 가지 결정될 일이 있다.
그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이래도 저래도...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일들 가운데 일이 아닌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 이고,
최고의 순간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나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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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득하기를... :: 2009/09/02 00:18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데, 나는 (소위) 하나님의 일을 보고 있다."

8박9일의 예수마음배움터 피정을 마치면서 나에게 던지는 말은 '어디 보니?'
하나님이 보시는 곳을 같이 볼 수 있으면 생활은 많이 달라진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 휩싸여 고민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고,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을 깊이 누리게 된다.
이 순간이라 함은 바로 지금 나의 마음에 대한 관심이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가 가을 하늘처럼 맑아지는 경험을 하는 거다.
'관상'이라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

하나님, 이 순간 저의 마음을 말끔히 비울께요.
하나님께서 가득하시도록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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